2024.03.04 -본질, 그리고 근원. 세상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가. 이 땅의 철학자들은 각기 다른 관점에서 물음에 답했다. 고대 그리스시대로 들어서면서 철학자들은 사물의 본질 혹은 실존하는 것의 근원을 '물질'에 두었다.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 주장한 탈레스는 상황에 따라 대상의 존재 방식은 변하나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즉, 물의 속성은 환경에 따라 변화할 수 있으나 근원은 불변하는 것이며 그 원리를 획득하는 것이 핵심이라 말한다. 속성은 가변적이나 본질에 대한 '원리'만 체득한다면 상황이 변한다 하더라도 그 원리로 하여금 하위의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되어 효율성이 극대화된다는 시각이었다. 접근 방식은 좋았다. 하지만 물질 하나로 세상을 자세히 설명하기엔 이 세상은 너무 중구난방이었다. 그래서 일원론에서 나아가 이원론, 삼원론 등 다원론까지에 다다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가 판치는 세상을 단지 몇 개의 구성요소만으로 설명하려니 한계 투성이었다. 당시 자연철학에 대한 회의가 일어남과 동시에 정치에 대한 관심이 발발하면서 소피스트가 등장했고 비로소 상대주의가 탄생하게 된다. 소피스트의 철학은 철저한 상대주의로 인식과 가치의 상대성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마치 개개인의 취향과 상대성을 존중하는 핵개인의 시대라 칭할 수 있을 법도 하다. 하지만 무엇이든 과유불급이라 하였으니 지나치면 회의주의, 무책임 혹은 이기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는 폐해가 있었다. 이에 반기를 들며 도덕적 아나키 상태를 주장하며 소크라테스가 등장한다. 소크라테스는 필드 위의 공격수는 아니었다. 자신의 철학을 강력히 어필하거나 상대주의를 신랄하게 꾸짖지는 않았으나 스스로 문제를 자각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철학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였다. 물론 소크라테스는 납득불가한 죽음을 맞이했지만 이에 플라톤이 뒤따르며 절대주의 정신을 이어간다. 진리는 변하지 않고 보편적이며 물질은 감각으로 알 수 없는 초월적인 이데아라 주장하며 이성적 사고의 힘을 피력한다. 절대주의와 상대주의. 무엇이 옳은가? 어떠한 대상의 본질 혹은 인간의 근원을 두고 이렇다 저렇다 운운하는 철학자들은 그 대상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해 각기 다른 시각이 담긴 '답'을 내는데 이른다. 각자만의 철학과 주장을 펼치는 것은 역시 상대주의이다. 다만, 이 상대주의는 절대주의와 공존한다. 어떤 물음에, 어떤 주장에, 어떤 현상에 대해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와 나라는 존재에 대한 생각과 철학의 원리를 구체적으로 형용하기란 혹은 감각으로 느끼기엔 어려운 것이지만 '원리'는 반드시 존재한다. 우리는 그 절대성을 각자만의 방식으로 보존하고 있다. '나'로 이루어진 이데아를 형성하지 못하면 상대주의는 없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당대 그리스 시대의 철학의 이 파 저 파 떠드는 것은 사실 그 철학에 옳고 그름을 따지고자 했던 것이 아닌, 정치적 싸움의 일환이라 보는 것이 제법 그럴싸할 듯하다. 옳고 그름은 나의 원리에서 출발될 뿐이며 이는 상대가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나의 관점에서 상대가 옳지 못할 뿐이며 그저 다를 뿐이다. 고로 옳고 그른 것은 나의 원리에서 출발될 뿐이며, 그 옳고 그름은 상대가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나의 관점에서 상대가 옳지 못할 뿐이며 다를 뿐이다. 절대주의와 상대주의는 공생한다. 이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것이 단연 영화 '엘리멘탈'이 아닐까 한다. 세상을 이루는 원소, 작디작은 구성요소들이 너무나 귀여운 캐릭터가 되어 애니메이션에 등장했다. 영화에는 다양한 원소들이 등장한다. 마치 카멜레온처럼 주위 환경에 따라 자유자재로 형태를 달리할 수 있는 물 '웨이드'가 있고, 조금은 거칠지만 그 자체로 강력한 힘이 있으며 다른 대상을 유연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불 '앰버'도 있다. 또 싹을 틔워 삶을 풍요롭게 하는 흙도 있으며 그 사이사이에 여유를 불어넣을 수 있는 바람 역시 있다. 이처럼 이곳의 모든 요소는 그 자체로 존재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절대주의적 가치를 지니게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진 그 마을 역시 다채롭고 아릅답기까지 하다. 그렇다 해서 서로의 경계와 영역을 침범하거나 해치지도 않는다. 나만의 형태로 존재하고 그 원리를 이어가되 조화롭게 살아가며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세상이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회 속에서 나의 존재를 뿌리내릴 수 있는 형평성의 기회를 갖고, 그들을 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다양성을 확보해 가는 것. 이 세상에 옳은 철학은 없다. 나의 존재를 인식하고 나만의 원리를 심구하는 것이 진리이다. 그리고 그 원리로 하여금 영역을 넓혀다가 마주한 누군가와 여유로이 대화하며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포용할 수 있는 것이 곧 이 세상의 삶의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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