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22 - 눈. 동화에서나 나오는 펑펑 내리는 눈은 보기에만 좋았지, 내리면 그토록 싫은 눈이었다. 신발이 젖어 물기가 안으로 스며들면 새 양말이 어느새 축축이 젖어 찝찝했고, 길 위의 녹아버린 눈을 밟고 지나갈 때면 구정물이 뒷다리에 튀어있었다. 또 길을 오르내릴 때면 온 발바닥에 힘 꽉 주어 중심을 잡아야만 했고, 멋지게 세팅한 머리가 축 가라앉으며 떡지는 것을 막기 위해 우산도 챙겨야 했다. 눈으로 볼 때만 새하얀 눈이 나는 싫었다. 그 눈 뒤에는 온갖 수고로움이 뒤따랐고 여간 보통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기예보가 눈 소식을 알릴 때면 어김없이 한숨 내뱉으며 하루를 시작했고 길이 꽁꽁 어는 날이면 신경을 날카로이 세우곤 했다. 하지만 사실 나는 눈 자체가 싫은 것이 아니라 눈 때문에 생기는 좋지못한 상황이 싫었던 거였다. 집 안에서 큰 창으로 펑펑 내리는 눈을 볼 때면 마음이 뽀송했고, 5살도 채 안된 아이가 눈 한송이를 만지며 손뼉 박수를 칠 때면 해맑아졌다. 마음이 우중충해지는 날이면 눈 소복이 쌓인 드넓은 산을 보며 마음을 뻥 뚫어내기도 했고, 그냥 이유 없이 좋아지는 날도 더러 있었다. 그 덕에 느낄 수 있는 좋은 점이 많음에도 불편함과 어려움에 집중한 나머지 그 가지를 잊고 지내왔다. 어쩌면 기억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토록 싫었던 눈이 지금 누군가의 가족에게는 그토록 행복한 대상이 되었고, 오히려 더 많은 기쁨을 주는 것이 되었다.만약 눈이 사라지고 비만 펑펑 내리는 나날이 계속된다면 그때 우리는 또 눈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관점의 차이일 뿐, 내가 행복한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면 그걸로 되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찌하면 이 행복을 증폭시킬 수 있는지, 혹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어떤 저항을 두어 부정성을 막아낼 수 있을지 준비해둘 수 있으니 꽤 괜찮은 하루들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더 좋은 방향에 마음을 옮겨두고 쌓아가다가 어떤 힘든 순간이 왔을 때 그때의 마음을 조금 빌려와 마음의 밸런스를 맞추어 갈 앞으로가 되길 기대해본다.

콘텐츠를 더 읽고 싶다면?
원티드에 가입해 주세요.
로그인 후 모든 글을 볼 수 있습니다.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