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신 지 1년이 넘어가는 듯하다. 멀리 있다는 이유로 찾아뵙지 못하다가 이번 연말 대구 집에 갔을 때 외할머니를 만나러 갔다. 엄마가 계속 나에게 말했다 "할머니 보고 울지 마라!!" 울지 마라 울지 마라.. 내가 평생 제일 많이 들어온 말 중 Top3 안에 들 거다. 누구는 울고 싶어서 우는 줄 아느냐고 평생 생각해왔다. 나도 누구보다도 안 울고 싶은 사람이라고!! 남편에게 부담 주고 싶지 않아서 엄마랑 둘이서만 오전 일찍 버스를 타고 나섰다. 버스 뒷자리에 앉아서 엄마의 뒷모습을 오랜만에 한참 볼 수 있었다. 근데 나보다 흰머리가 적은 것 같다?? 요즘 나는 뒷머리부터 흰머리가 엄청 많이 자라고 있다. "엄마! 엄마보다 내가 흰머리 더 많은 것 같아!!" "찌랄 한다! 내 얼마 전에 염색했다!!" 아.. 염색을 했겠구나... 난 아직 염색까지 할 정도는 아니지.. ㅋㅋㅋ 언제나 젊은 엄마로 내 마음속에 있는 우리 엄마는 흰머리도 안 나는 줄 알았지~~ 요양병원에 도착하니, 개인적으로 준비해 온 코로나 키트로 먼저 코로나 검사를 하고 괜찮으면 긴팔 앞치마 모양의 비닐 옷을 받아 입고 병실로 면회를 가게 되어있었다. 외할머니 상태가 괜찮으면 우리가 있었던 1층 로비까지 나오실 수 있는데,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시단다,, 우리가 직접 병실로 올라가 5분 정도만 잠깐 볼 수 있단다. 아픈 엄마를 보러 가는 나의 엄마의 뒷모습은 힘이 없다. 그런 엄마를 보는 나도 가슴이 아리다. 외할머니는 내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많이 안좋아보였다. 우리 외할머니가 틀니를 하고 있는 줄도 몰랐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틀니를 빼니 우리 할머니 얼굴이 너무나 낯설다. 우리 할머니 아닌 것 같다. 눈도 한쪽만 뜨고 겨우 나를 쳐다보신다. 그리고 엄마가 "나랑 지금 누가 왔노 엄마! 옆에 누구고?" 하고 물으니 "정희네!"라고 하신다. 정희는 나의 이모 이름이다. 그런데 엄마가 "그래! 정희다 정희랑 왔다!"라고 답한다???!!!! 순간 뭐지? 내가 이모인척 해야하는 상황인가? 싶어 엄마한테 나 정희 하라고?? 했더니 "아! 아! 내가 니를 정희라 해뿟네!! 아니다 정희 아니고 지현이 아니가 지현이!!" 하셔서... 다행이면서도 어딘가 찜찜하다. 근데 뭐 이해한다.. 나도 집에서 자주 아들 보고 '민호'라고 하니까,, 민호는 내 동생 이름이다. 이제 외할머니도 나를 첫째 손녀로 봐 주시는 듯하여 가만히 눈을 맞춰보았다. 외할머니 눈에 눈물이 맺힌다. 내 눈에도 눈물이 맺힌다. 엄마가 울지 말라고 했지만 처음부터 들어줄 수 없는 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외할머니와 눈만 마주 보고 있었는데 순간 외할머니 눈빛이 싸늘해졌다. 그러고는 "다들 나가라!! 나가라!!" 소리치셨다. 나는 외할머니 눈빛이 변할 때 이미 느꼈다. 자존심이 상한 존엄성을 잃은듯한 자의 눈빛이었다. 아마도 외할머니는 더 이상 본인이 이렇게 늙고 약해진 모습을 손녀인 나에게 보이기 싫었던 것 같다. 외할머니이기 이전에 같은 한 인간으로서 그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그런 외할머니의 모습을 보니 나는 더 이상 슬퍼할 수도 없었고 어떤 말을 더 할지 떠오르지도 않았다. 자주 오지도 못하니 또 오겠다는 말도 안 나왔고, 외할머니 빨리 나아서 퇴원해서 집에서 보자는 말도 꺼내지지가 않았다. 다만 외할머니가 조금이라도 더 편한 마음으로 계시게 해달라고 그 누구도 믿지 않는 내가 아무에게라도 빌고 싶었다. 외할머니, 초등학생 때 주말에도 엄마 아빠가 다 일하러 가고 동생과 집에 있다가 너무 심심할 때면 동생 손잡고 버스 타고 한참을 걸어 외가댁에 갔었어요. 외할머니가 언제나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시고 맛있는 걸 잔뜩 만들어 주셔서 너무 좋았어요. 엄마 아빠가 바빠서 같이 못 놀아 줘도, 외가댁에 가면 되니까 저희는 너무 좋았어요. 외가댁에 가면 외할머니도 있고 외삼촌들도 있고 방도 많고 정원도 있고 어딜 가나 놀 거리가 가득했으니까요. 그렇게 사랑도 주고 추억도 주신 외할머니께 지금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네요. 외할머니가 덜 힘들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기억하는 좋은 시절처럼 외할머니도 좋은 날들만 떠올렸으면 좋겠어요.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사랑하고 사랑합니다. #글쓰기챌린지4 #나의외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