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17 Chap 3. 음, 어떻게 찾는 건데요? 미안하게도 답은 내게 없다. 내로라하는 고급 스킬을 꾀어내 엮은 비법서를 가졌다 하더라도 의미가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흔해 빠진 소리긴 하다만, 너무나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흔하디 흔해진 이유를 생각해 본다면 거기에 해답이 있을 거다. 산업혁명과 IMF를 겪으며 우리 사회는 급격히 또 좋게 바뀌었다. 그 덕에 조금이라도 더 누릴 수 있는 꽤 괜찮은 삶이지만, 점점 더 바빠지는 사회에 끌려다니다 보니 결국 나와 속도를 맞추는 방법을 잊고 말았다. 아니, 배우지 못했다. 아래 이야기를 한 번 살펴보라. "눈 감고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종료 버튼을 눌러대기 바쁜 아침, 게슴츠레 뜬 눈으로 출근 준비를 끝냈다. 오늘도 살기 위해 살아낸다. 당최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좋지도 싫지도 아니한 업무. 나름대로 뼈 깎아 준비한 프로젝트 파일, 팀장..ㅅ..ㄲ 바탕화면 휴지통에 들어가 있다. 젠장. 시커먼 콩나물 사이에 끼어 손잡이를 잡고 겨우 몸을 지탱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냉장고를 열어젖히니 구석탱이에 있는 반찬 그릇에 흰 꽃이 활짝 피었다. 에휴. 결국 오늘도 사발면에 찬밥 말아 때우고 캔맥 한잔으로 화를 눌렀다. 두둥. 넷플릭스가 잘 시간을 알린다. 또 내일이 오고 있다. To be continued.." 왠지 익숙한 모습 아닌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자본이라는 것에 발목 잡히면 참으로 살기 팍팍한 세상이다. 즉 그 시간을 살아가는 나 자신이 아닌, 삶을 살아내야 하는 시간에 나를 양보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행동과 생각의 기준점을 '나'에게 맞춰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소수점 몇 백, 몇 천 자리까지 이어지는 정교한 나를 찾아가는 연습을 해야만 한다. 나의 생각, 행동, 느낌, 감정, 원리 등 팍 튀었다 사라지는 그 찰나의 순간을 알아채 써 두고, 또 씹어 삼켜야 한다. 그렇게 메타인지를 늘리는 규칙적인 운동을 해야 나의 동기에 불씨를 지필 수 있는 연료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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