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10 Part 5. 실은 그거, 내 패였어.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무릎에 나사가 빠진 듯 넘어지기 일쑤였고 큰 몸뚱이를 쥐구멍에 쑤셔 넣어 나오고 싶지 않은 날들이 훨씬 더 많았다. 그렇게 실패감에 절여졌다 또 말려졌다 반복했었다. 구름이 물고 있던 빗물 주머니가 팡하고 터지면서 나는 난생처음으로 갈색빛 눈동자에 '비'라는 것을 담았다. 떨어지는 빗방울은 땅바닥을 만나 퍼져버리기에 연약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바람에게 억지로 등 떠밀려 쏟아지는 빗줄기는 생각보다 아픈 것이었다. 이쯤이야 이겨낼 수 있다며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던 나의 판단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날의 체험학습 덕일까, 지금의 나는 꽤 대차게 쏟아지는 물줄기도 그럭저럭 잘 이겨내곤 한다. 튼튼한 우산이라는 내 오른팔이 있기 때문이며, 길쭉한 장화라는 왼팔이 있기 때문이다. 휘청거리던 지난날의 나는 작은 패배로 경험이라는 배지를 획득했으니, 이 실패라는 거 꽤나 쓸모 있는 것이 틀림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패, 패배, 좌절. 듣기만 해도 간담 서늘하고 음침한 단어는 멀리 버려두고 오고 싶은 말이다. 괜스레 내 밝은 빛을 빼앗을까 봐서, 물들일까 봐서. 옆에 두면 아무도 내 옆으로 오지 않을 것 같아 두렵고도 무서웁고 또 부끄러울까 봐서. 하지만 놀랍게도 이 세상의 만물은 실패 덩어리다. 실패라는 패를 쥐고 있어야 새로운 패를 쥘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기대어 앉아 책 한 권 맘 편히 읽을 수 있는 이 책상은, 처음부터 이렇지 못했다. 나무판자 떼다가 망치 몇 번 두드려 만들었을 것이다. 그치만 불안정한 높이, 매끄럽지 못한 재질, 투박한 디자인 탓에 숱하게 깨지고 깎이며 실패했었기에 지금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 패는 너무나도 소중한 자원이 되는 것이 분명하다. 이 "실패"라는 말이 두렵다면, "실은 내가 가지고 있는 숨겨둔 패"라 생각하는 편이 훨씬 가벼울지도 모른다. 누군가 '너는 실패했어.'라고 비수를 꽂아준다면 씩 웃으며 '훗, 그게 내 패라는 것을 어찌 알았지?'하고 되받아치면 된다. 내가 바뀔 수 있는 패를 하나 내어주고, 그로부터 내가 어떻게 요리하고 플레이팅 할지는 절대 비밀로 숨겨두기로 한다. 준비가 다 되었을 때 '짠'하고 뚜껑을 열어 공개하고, 입을 다물지 못하는 그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 '다시 시도하고 더 잘 실패하라'는 사무엘 베케트의 띵언처럼 어제보다 질 좋은 실패를 쌓아가 보도록 하자. 그렇다면 어제의 실패씨는 미래에 있는 미래에 있는 오늘의 실패군을 바라보며 '와, 멋진걸?'하고 부러워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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