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07 Part 4. 마주보기 지구 종말이라도 온 듯 잡동사니 마구 욱여넣은 배낭을 힘껏 들어 올려 어깨에 걸쳤다. 어금니 꽉 깨물 정도로 결의에 차 발걸음 내디뎠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로 헛걸음하기도 하고 에메랄드 빛 바다가 보이는 곳에 닿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목적 없는 목적지를 향해 거닐면서, 나는 나를 충분히 곱씹었다. 더 이상 단물이 나오지 않아 질길 때까지 말이다. 내가 보였던 행동의 흐름을 되짚었고, 내가 던졌던 말의 속내를 헤집었으며 또 내가 느꼈던 감정의 이유를 타고 올라갔다. 아이가 제 눈 가리고 아웅 하듯 부끄러웠던 날도 많았고, 이불 발로 걷어차 날려버릴 쪽팔린 날들도 허다했다. 그럼에도 그 순간엔 모두 내가 있었고, 이 파란만장한 모험기가 그냥 나 자체임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무거운 짐을 찬찬히 내려놓고 가방을 끌러 하나 둘 꺼내어 펼쳐두니 여러 갈래길이 보이는 것이었다. 깜깜한 어둠에 둘러싸여 쪼그라드는 날이면, 눈을 질끈 감아 행복한 추억을 더듬거리며 방향을 틀었고 그렇게 나를 다독였다. 내 것이 아닌 것에 내 이름표를 억지로 붙이고픈 탐욕스러운 날이면, 힘에 부친 이들을 도왔던 순간을 떠올려 겸손함을 찾았다. 세상은 불공평하다며 하늘을 향해 삿대질했던 날이면, 하루가 무사히 가고 있음에 감사했던 마음을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경험치가 다른 또 다른 나와 대화하며 힘을 합쳤다. 그렇게 해결할 수 있다 믿었고, 해결하기 위해 얘기했다. 그러고 보니 뿌리를 송두리 째 뽑아 모조리 바꿔버릴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나의 가치는 불변의 것이기에 이를 조금 더 말끔히 광내기 위해선 그냥 나와 머리 맞대어 의논하고 얘기 나누면 되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가 나의 손을 잡고 닫힌 문을 열어 나갈 수 있었고 쑥쑥 자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