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과 애정을 촛불처럼 옮기는 온보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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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 우연히 보게 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의 한 에피소드 중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아직 3,4살 정도의 아기인 첫째가, 신생아에 가까운 아기 동생을 너무 심하게 괴롭히는 것이었습니다.
문제 행동을 처음 본 저는 '저렇게 어린데도 자기보다 약한 사람이 하나만 있으면 기를 쓰고 괴롭히는구나. 역시 사람은 날 때부터 악해.'라며 비관적인 생각으로 혀를 끌끌 차고 있었는데
마법같은 오은영 선생님의 솔루션 시간,
신생아인 둘째 아기를 첫째에게 처음 보는 순간이, 엄마 품에 둘째가 꼭 안겨있는 모습이었던 점
둘째 아이가 생긴 순간부터 신생아 육아로 바빠진 탓에 첫째에게 이전처럼 시간을 내지 못하던 부모님의 행동 등을 짚어내셨습니다.
이어, 새로운 가족이 생기게 되면 원래 있던 아이들과 처음 만나는 순간에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아기를 품에 안고, 원래 있던 아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새로운 아기를 만나도록 권장하는 내용이 나왔고,
엄마가 직접 첫째 아이의 손과 아기의 손을 대어 크기를 비교해주며 세상에 갓 나온 아기는 너에 비해 너무나 작고 연약하니
'우리 함께 아기가 튼튼하게 자랄 수 있도록 지켜보자.'는 메시지를 전하는 게 중요하다는 내용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퇴근 후에 바로 아기를 보러 가기보다는, 먼저 옷도 갈아입기 전에 첫째에게 가서 애정과 관심을 듬뿍 표현해준 뒤 함께 손을 잡고 아기에게로 가는 것을 권하셨습니다.
생각해보면 내가 아직 어린 아이인데 부모님이 어느 순간 새로운 아기를 데려오더니 아기에게만 집중하고 원래 함께하던 시간들이 사라져버린다면,
그것을 폭력적으로 분출하지는 않더라도, 아주 아주 공허한 마음은 꼭 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엄마 아빠가 다시 예전처럼 퇴근하자마자 나를 안아주고, 내 손을 잡아주고 내게 눈을 맞추며 함께 아기를 보러 가준다면 눈물나는 행복감과 함께 그간의 서운함이 사르르 녹아내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그 방송을 다시 떠올릴 일 없이 매일을 보내던 어느날,
갓 이직을 한 후배로부터 고민 상담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갓 입사했을 땐 자신이 발표를 할 때마다, 사용 개수가 정해진 칭찬 이모지를 자신에게 전부 부어주던 동료들이 더 이상 그러지 않아 속이 탄다는 것이었습니다.
힘들어하는 동생이 안타까웠지만,
T인 제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주 안타까운 목소리로 현실을 알려주는 것 정도였습니다.
"온보딩 기간을 기본값으로 생각하면 힘들지. 아무래도 언제까지나 네게 갯수가 정해진 이모지를 쏟아줄 수는 없는거니까......"
그러자 동생이 더 속상해하며 답했습니다.
"나도 안다? 온보딩 기간이어서 그랬던 것도 알고, 언제까지나 나한테 다 쏟아줄 수 없다는 것도 너무 이해해.
근데 그러니까 더 힘들어. 대놓고 말을 할 수는 없는데 근데 그걸 다시 너무 받고 싶어..."
후배의 말에 문득 머릿속에 예전에 보았던 육아 방송이 떠올랐습니다.
멋지게 사회 생활을 해나가는 어른들도 마음 속 한구석에는, 여전히 받던 사랑과 인정을 빼앗긴다고 느낄 때 너무나 속상한 첫째 아기를 데리고 있구나.
맡은 파트 중 한 곳의 구성원이 마침 딱 1명이던 저는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전화를 끊고 깊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마치 동생이 '지금 첫 파트원한테 쏟고 있는 열심과 애정을, 새 파트원이 들어오면 그대로 들어다가 옮겨둘거야? 어른이라고 해서 그게 안 서운한 건 아니야. '라고 말해준 것 같았습니다.
그때 머릿속에, 전화 중 문득 떠올랐던 육아 방송이 다시 떠올랐고,
그 방송의 내용을 돌이켜 생각해 볼수록 어렵게 전략적으로 뭔가를 짜기보다는 첫 구성원에게 신뢰와 인정과 애정을 최대한 많이 보이는 것이 우선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으로 붙이는 불이 밝게 타야 그 불을 옆으로 옆으로 옮겨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회가 될 때마다 제가 얼마나 팀원분을 믿고 아끼는지 최대한 진심을 담아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작업물이 훌륭하게 완료된 모습을 볼 때마다 소위 말하는 '주접'을 떠는 일도 넘치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게 뭐에요! 어떻게 지난번보다 더 잘할 수가 있어. 이젠 칭찬 듣기도 민망하지 않아요? 언제까지 내가 주접을 떨게 할 셈이야."
처음 들을 땐 민망해 하다가, 갈수록 익숙해지고, 나중엔 안 해주면 섭섭해 하는 모습이 괜히 흐뭇했습니다.
새로운 팀원분이 오실 땐 자리를 기존 팀원의 바로 옆자리에 배치했고
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원래 팀원분을 찾아가 원래 떨던 주접을 떨고 작업에 대해 의논을 했습니다.
첫 팀원분과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난 뒤에는 함께 새 팀원분의 작업물을 보곤 했습니다.
"ㅇㅇ님, 세상에 우리 ㅁㅁ님 작업 좀 봐요. 이게 첫 작업이라니 말이 돼요?"
그러면 기존 팀원분이 마치 제가 했던 것처럼 새 팀원 분의 작업물을 칭찬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 이걸 대체 어떻게 하셨어요? 기본 설정으로 이렇게 하셨다고요? 너무 대단하다. 저도 알려주세요!"
"진짜 이 기능을 이렇게 잘 쓰는 사람 저는 처음 봤어요."
함께 새 팀원만을 위한 칭찬 감옥을 만드는 동안 저와 기존 팀원분은 원래 그랬던 것처럼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이어갔고, 동시에 새로운 팀원을 향한 인정과 애정도 쏟아주게 되었습니다.
이후 팀원들이 더더욱 늘어날 때마다 같은 패턴을 반복했습니다.
부담스러우면 어쩌나 걱정도 많았지만,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을 안고 들어온 신규입사자 분들은 주로 부끄러워하시면서도 크게 안도한 웃음을 보이시곤 했습니다.
팀원이 10명을 훌쩍 넘었을 때도, 출근을 하면 모든 팀원들 자리에 한번씩 가서 잘 지내는지, 문제는 없는지, 오늘도 작업은 왜 이렇게 멋진지에 대해 한명한명 묻는 시간을 최대한 매일 가지려고 노력했습니다.
첫 불을 최선을 다해 밝히고, 그 불을 옆으로 옮기는 방법만 한번 전해주니 어느새 팀은 화롯불을 밝힌 듯이 밝아져 있었습니다.
나보다 훌륭한 팀원들을 매니징하게 되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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