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없는 팀에 S급 인재를 모셔오려면 - 제가 새로 맡은 파트에 필요했던 직무는 프리랜서로 일하는 비율이 적지 않은 직종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S급 실력과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가지신 분들은 굳이 회사로 들어오실 이유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아직 체계도 완전히 자리 잡히지 못했고 인원도 없고, 3D조직 자체가 처음 생겼으니 보고 따라할 선임도 없는 상황에 그런 분들을 모셔오는 것이 과연 어떻게 가능할까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쯤 되니 신규 팀을 매니징하는 일이란 원래 말도 안 돼 보이는 미션을 받아 머리를 쥐어뜯고 흙바닥을 구르며 미션을 완수한 뒤, 너덜너덜해진 채로 극한의 뿌듯함을 느끼는 그런 포지션인가보다 싶어 이젠 딱히 막막한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세상만사는 시작이 반이요, 팀매니징은 채용이 반인 것을 가장 중요한 초기 구성원으로 특급 인재를 모시는 일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선은 관련 직종 프리랜서 분들의 목록을 정리하고 가능한 한 많은 정보들을 모아 스프레드시트에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입사 제안을 드릴 분들을 추려 입사 제안 메일 작성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채용팀 분들로부터 굉장히 전문적이고 군더더기가 없고 모든 것이 매끄러운 입사 제안 매일 탬플릿을 전달받았습니다. 하지만 프리랜서 생활을 직접 해봤던 저는, '지금 필요한 건 깔끔하고 전문적인 메일이 아니다.'라는 직감에, 거의 완벽한 입사제안 메일 탬플릿을 잠시 닫고 뜬금없이 제가 왜 이 회사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부터 구구절절 적기 시작했습니다. 저 스스로도 프리랜서 생활을 해 왔다보니, 수입이 안정되었어도 느껴지는 그 끝없는 불안감과 사회적으로 붕 떠있는 듯한 공허함, 명함 한장을 건네는 것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고 증명되는 친구들과는 달리, 나는 나를 설명하고 증명하려면 처음 만난 상대에게 구구절절히 설명을 해야만 하는, 그러고도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 듯한 그 기분, 같은 공간에서 혼자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보내며 느끼는, 온세상이 빠르게 돌아가는 와중에 나만 멈추어있는 것 같은 일종의 공포감과 외로움, 모든 비용을 직접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 매출에 비해 훨씬 떨어지는 순수익, 실무 외에도 챙길 것이 너무 많아 실무에 집중할 시간이 없을 때 그 아까운 마음 등 프리랜서라면 아무리 수익이 많아도 느끼게 되는 그 감정들을 다 느껴보았다고, 그리고 기업에 입사한 후 이러한 부분들이 어떻게 채워지게 되었으며, 이 과정을 함께 하고 싶은 분으로서 ㅇㅇ님을 모시고 싶은 이유는 ㅇㅇ님의 어떤 점들이 빛났기 때문이라고, 구구절절 손편지 쓰듯 한분한분의 메일을 모두 다르게 작성했습니다. 보신 상사분께 '길게도 썼다.'는 피드백을 받았지만 다행히 그 내용 그대로 허락을 받았고 놀랍게도 제가 연락을 드린 수십명의 작가님들로부터 답신을 받았습니다. '원래는 취업 생각이 없었는데 한 번 자세히 들어 보고 싶다.'고 답변주시는 경우들도 적지 않았고, 아쉽게 연이 닿지 못한 경우에도 자세히 상황을 담은 답신을 보내주시며 죄송하다고 말씀해주시기도 했습니다. 마치 취준생인 제가, 채용 기간도 아닐 때 여러 입사 희망 기업들에 하나하나 맞춤 자소서를 적어 지원했는데 그 중 대다수의 기업에 서류합격을 한 기분이었습니다. 만약 그 취준생이 서류합격한 기업에 면접을 보러 가게 된다면 아마 간절한 마음으로 사소한 모든 것들까지 준비하려 할 것입니다. 예상 질문을 뽑아 열심히 연습을 해보면서 말투, 말버릇, 표정 등까지 신경써 준비할 것이고 어떤 옷을 입을지 미리 준비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침부터 꼼꼼히 옷매무새를 다듬을 것입니다. 만약 도착을 했는데 반드시 가져가야 하는 준비물을 잊었다면 혼비백산해서 주변에서 사올 수 있다면 사오고, 퀵을 불러야 한다면 퀵을 불러서라도 받아낼 것입니다. 간절하면 디테일에 집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입사 제안 커피챗을 진행할 때 이런 마음으로 진행했습니다. 그랬기에, 다른 기업 팀장을 맡고 계신 분과의 커피챗이 있던 날, 함께 커피챗에 들어가주시기로 한 그룹장님으로부터 "명함이 다 떨어졌는데, 아직 배송이 안 왔습니다. 하경님 것으로 챙겨주세요."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저는 혼비백산해서 바로 임시 명함 발급 받을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기업 공용 명함 제작 페이지의 샘플 이미지를 캡쳐해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정보 수정을 요청 드렸습니다. 그리고, 회사의 원래 명함인 저의 명함과 그룹장님의 명함이 묘하게 달라지면 통일성이 없어보일까봐, 저의 정보를 담은 명함도 함께 부탁드렸습니다. 주변의 인쇄소를 찾아가 비싸도 되니 가장 빨리, 가장 소량으로 인쇄를 부탁드렸고, 돌아와 그룹장님께 임시 명함을 건네며 숨도 못 고르고, 그제야 안도감을 느끼며 심통을 냈습니다. "저보다 더 윗분인 그룹장님의 명함을 받았을 때 그 무게가 다를텐데 꼭 가지고 와주셔야지요!" 작은 부분도 마치 수능시험장에 수험표를 챙겨가는 마음으로 철저하게 챙겼습니다. 설령 대화를 나눈 후 우리 핏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같은 업계의 뛰어난 분께 완벽히 준비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우리 팀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드리는 것은 채용 브랜딩적으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서툴게, 하지만 진심으로 채용에 몰입하다 보니 아무것도 없던 저희의 새로운 파트는 이미 업무 시스템이 잘 설계된 타기업에서 팀장을 맡으셨던 분들, 프리랜서로 큰 수익을 내고 계셨던 분 등 정말 뛰어난 스펙을 가지셨으면서, 동시에 모델링에 대한 열정이 넘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강하며 유쾌한 분들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정말 멋진 구성원들을 채용하고 보니, 채용이 반을 넘어 8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꽉 찬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제 정말 내가 남은 20%만 잘하면 될 것 같은 기분에 자신감이 차올랐습니다. 이렇게 저는 또 하나의 '나보다 훌륭한 구성원들로만 이루어진 조직'의 조직장 자리를 겸직하게 되었습니다. - 나보다 훌륭한 팀원들을 매니징하게 되었다(5) https://brunch.co.kr/@clipkey/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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