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불만이어서 처절했던 이직 못하는 이직 드리머의 경험기…. <1> 미국에서 job찾기 어릴때부터 미국에서 일하고 살고 싶었더랬다. 그래서 대학 입학하면서부터 꼭 유학을 가서 취직을 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냥 머리속에 바로 취직은 안될거 같은니…미국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지원하면 취직할 수 있을지 않을까 하는 어린마음의 치밀한 설계였다. 미국 학교를 다니면서도 취직은 졸업하면 되는거라고 생각해서, 방학때는 인턴보다는 써머스쿨을 다니면서 다른짓을 많이 했다. 지금 와서 아쉽거나 후회되는 기억은 아니나, 내 목적과 실행 방안이 맞지 않았던 것은 맞는것 같다. 졸업을 하고 또 다시 한 실수라면 실수가 무조건 짐을 싸서 서부에서 동부로 간거였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짐싸들고 직업 구하러 왔어요…했으니….부산에서 서울 온거나 서울에서 미국 짐싸들고 가는거나 별 차이 없었다. 여하튼 그 때부터 처절한 취직/ 이직 경험이 쌓인거 같은데….. 그 때 만든 회사 이름만 바꾼 이력서만 200개 넘었고, 포트폴리오도 몇 가지 버전으로 만들었다. 근대….참 순진했던게…..금융위기 직후의 뉴욕은 살벌했고, 특히나 부자들이 돈을 쓰지 않는 건축 시장은 꽁꽁 얼어버렸다는 것이다. 당연히 나같은 경력도 없는 신참은 더더 힘들었다. 기억에 남는 인터뷰가 하나 있는데, 누군가들에게는 굉장히 꿈의 회사였던거 같다. 그런데 당시 나는 건축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별로 없고, 그냥 회사를 다니고 싶다는 생각과 만사가 귀찮아 라는 안이한 생각이 가득찬 때라서 그 면접에서 눈을 반짝이지 못했다.파트너의 마음에 들지 못했던 것은 당연했는데, 나는 원래 그들은 나를 안뽑았을 거야…이러면서 굉장히 무기력했던거 같다. 물론 에너지 뿜뿜만으로도 구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만, 에너지 조차 없는 인터뷰이는 정말 매력적이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그 다음부터는 그래도 뭔가를 해보고자 했으니 좀 나아진건가? 여하튼 20년 지난 기억들을 다시 생각해봐도 가슴이 아프고, 내 청춘이 참 안타까웠던거 같다. 다음에는 한국에서 온갖 외국계 회사 삽질한 기억들을 떠올리고 나태해진 나를 다시 다잡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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