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생활이 처음인데 팀장을 하라고요? - 저는 학부를 졸업한 후, 바로 프리랜서로 3년간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프리랜서 4년차에, 프리랜서라면 모두가 경험하는 지독한 불안감과 외로움의 굴레 속에서 고민하던 중, "직장 경력만 쌓다가 프리랜서를 할 수는 있지만, 프리랜서 경력만 쌓다가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사회 초년생 시기에 조직 생활을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거다." 라는 어른들의 조언을 듣고 유니콘 기업에 일반 사원으로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맨땅에서 사무실도 기기도 각종 SaaS 비용도 전부 스스로 지불하며 일하던 저에게, 처음 들어간 회사는 너무나도 따스했습니다. 신규입사자의 부드러운 정착을 위해 마련된 정책들과 따뜻한 팀원들에게 신규입사자로서 살뜰히 챙김 받는 하루하루가 눈물나게 감사했습니다. '어른들이 자영업하지 말고 회사가라고 하신데는 다 이유가 있구나. 역시 어른들 말씀을 들어야 돼.' 같은 생각들을 하며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고작 1달 정도의 회사 생활로 '회사 생활' 자체의 난이도를 판단한 것에 대한 벌인지, 저의 안락한 회사 생활은 수습기간 3개월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일반 사원으로서의 수습기간을 넘기자마자 매니저로서의 수습기간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했던 당시 팀에는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는데, 타부서로 예시를 들자면 프론트엔드 개발자를 뽑아야 하는 자리에 백엔드 개발자를 뽑는 JD가 올라가 있는 바람에, 지원한 백엔드 개발자들 중 그나마 프론트엔드 개발이 가능한 분을 뽑아, 프론트 개발을 가르쳐 업무에 투입하는 식이었습니다. 당연히 인재가 영입되는 속도도 느려지고, 일을 함께 나눌 동료들이 들어오는 속도가 느려지니 기존 인원이 감당해야하는 일의 양은 많아졌습니다. 그 와중에 어렵게 새로 들어오는 인원들도 적지 않은 양의 교육이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팀을 나누고 JD를 올리기만 하면, 훨씬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부분을 바로잡지 않고 가다가는 저의 이지모드 회사 생활이 위태로워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 같았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생각을 하며 퇴근길 복도를 걸어가던 중, 일반 사원으로서는 뵙기 쉽지 않던 그룹장님을 갑자기 복도에서 마주쳤고, 순간적으로 저는 맥락없이 "죄송한데 잠깐만 뭔가 말씀드려도 될까요?"를 외치게 되었습니다. 당황스러울 수 있으셨을텐데, 당시 그룹장님은 너무나 흔쾌히 "그럼요, 말씀하실 일이 있으시다면 제가 당연히 들어야죠."라며 시간을 내어주셨습니다. "내일 괜찮으신가요? 내일 제가 자료 간단히 준비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집으로 달려간 저는 JD에 올라간 직무와 저희가 실제로 가장 많이 하는 업무의 차이점을 정리하고, 제가 입사하기 전부터 기존 팀원들이 해온 일들이 각각 어디에 해당되는지 나누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기업이 이 팀에 원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것을 원하는 지에 따라, 새로운 JD에 들어갈 사항이 어떻게 달라질 지에 대한 경우의 수들을 적어 넣었습니다. 작성을 마쳐 급한 불을 끄자, 갑자기 걱정이 밀려들었습니다.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일을 벌였나? 기존 시스템을 비난하는 것처럼 받아들이시면 어쩌지? 하지만 다음날, 다행히 그룹장님은 여러모로 긴장한 제가 최대한 편안히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셨습니다. 준비한 내용에 대한 설명을 마치자, 그룹장님은 HRBP님과 이후 액션에 대한 이런 저런 대화를 하시고, 제게는 '준비한 내용도 인상적이지만, 조직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그룹장을 바로 불러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가 인상적이다.'라는 피드백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현재 저희 팀원들은 다른 직무팀 내에, 다른 직무와 섞인 파트 안에 소속되어있는데, 별도의 조직이 필요하고, 해당 직무에 대한 이해도를 가진 조직장이 필요하다.'는 파트에 대해 이어 말씀하시던 중 물으셨습니다. "본인이 직접 할 생각은 없어요?" "저는 말도 안 되죠. 역량도 부족하고 애초에 회사 생활 자체가 처음인데요." 진심이었습니다. 저는 조직 생활 자체가 처음인데 조직 생활을 10년씩 하신 분들도 고전하는 팀장의 자리를 잘 해낼 가능성은 극히 희박했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팀장을 정하게 된다면 저보다 일찍 들어온 초기 멤버, 관련 전공을 한 팀원 등 저보다 이 회사에 대해 더 잘 알거나 이 직무를 더 잘하는 팀원으로 정해지는 것이 모두가 쉽게 납득할만한 결과일 터였습니다. 하지만 저의 사원 수습기간이 지나자, '액팅 파트장'이라는 수습 매니저 역할이 결국 제게 맡겨졌습니다. 지은 죄, 아니 벌인 일이 있던 저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지만, 다른 팀원들은 그 일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실무적으로 특출나지도 않고, 이 회사에서의 경험도 가장 적고, 기업 근무를 경험한 기간이 사실상 없고, 관련 전공을 하지도 않은 제가 갑자기 리더 역할을 맡게 되니, 팀원들은 어리둥절할 터였습니다. 실무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저보다 훌륭했던 팀원들은 감사하게도 그 상황에 대해 불만을 표하거나 저를 공격적 혹은 방어적으로 대하는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함이 가장 많은 사람이 키를 쥐게 된 상황은 팀원들과 저 모두에게 당혹스러움을 안겨주었습니다. 저는 팀원들에게 어떻게 내가 당신들에게 훌륭한 매니저가 될 수 있는지 납득시킬 수 있는 근거를 찾기가 힘들었고, 잘 해낼 자신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갓 입사한 사원의 한마디에 조직에서 팀을 신설해주시고 분리해주시고 JD를 교체해주신 마당에, 일을 벌려놓은 제가 도망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적어도 내가 벌려놓은 일을 어느 정도 수습할 때까지 만이라도, 부족한 나로 인해서, 훨훨 날 수 있는 팀원들이 빛을 보지 못하는 일이 없게, 회사에서 불행하지 않게, 본인이 성취한 일들에 대한 보상을 온전히 받을 수 있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어쩌다 시작된 저의 초보팀장 시절의 이야기를 이제부터 브런치와 링크드인을 통해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 나보다 훌륭한 팀원들을 매니징하게 되었다.(1) https://brunch.co.kr/@clipkey/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