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ached to post

"너는 잘 참잖아. 잘 참는 네가 참아라." -  저는 아주 적은 인원이라도 사람들을 책임지게 되는 순간마다, '합리적으로 선택하되, 내가 책임진 대상이 사람임을 잊지 말자.'는 생각을 강박적으로 하곤 합니다.  그런 강박이 생긴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은 저의 초등학교 6학년 담임교사였는데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저는 이유도 모르고 같은 반 학생 전체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걸어만 가도 뒤통수로 거세게 공이 날아왔고, 남학생들은 제 뒤통수를 누가 가장 세게 때리는지를 두고 시합을 했습니다. 가만히 자리에 앉아 빈 공책에 글씨만 적어도 단박에 심한 욕설과 함께 공책이 찢어지고 구겨져 제 얼굴로 날아왔습니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그 괴롭힘이 시작된 이후로 매달 자리 배치를 정하던 담임교사는 가장 폭력성이 강했던 남학생의 옆자리에 제 자리를 연속으로 계속 배치하는 것이었습니다.  짝이 된 그 덩치 큰 남학생은 수업 중에도 이유 없이 책상을 집어던지고 욕설을 해댔고, 그 모습을 못 볼 리 없던 담임교사가 침묵하는 걸 확인한 이후부터 괴롭힘은 더 당당해지고 심해졌습니다.   당시 교사를 따로 찾아가 어렵게 '선생님 왜 저는 매달 짝이 같아요?'라고 질문했을 때 돌아온 답변은 이러했습니다.  "너는 잘 참잖아. 쟤는 에너지를 어딘가엔 분출해야 되는 애니까 잘 참는 네가 참아라."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된 것은, 당시 저도 모르게 어머니가 무릎을 꿇고 제발 우리 딸 좀 살려달라고 담임교사에게 사정을 했을 때, 어머니께도 같은 말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경이가 잘 참아요. 하경이 같은 하나 참아 줘야 반 전체가 평화로운 거죠."  그 담임교사는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sns 같은 것도 없고 심지어 '학교 폭력'의 개념을 지칭하는 단어도 없던 당시로서는 그 일이 이슈 될 경로도 없었다 보니 본인이 괴롭힘을 방조하거나 일부 동참함으로써 생기는 리스크도 없었을 것이고  오히려 유달리 사나운 학부형들과 학생들을 맡게 되었을 때, 놀이공을 하나 던져주고 자신은 그 아수라장에서 한발 빠져나와 평화로울 수 있었을 테니말입니다. 그 교사는 폭탄이 터지지 않게만 관리하며 1년을 넘기면 그만이었을 겁니다.  실제로 그 교사가 받은 페널티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지금은 교장 또는 교감 선생님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은퇴 후 연금을 받으며 행복한 노년을 즐기고 계실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도 사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보아도 윤리적인 당위성을 제외하면, 그런 선택과 행동이 학급이라는 조직 전체가 굴러가는데 악영향이 된다거나, 리더인 당신에게도 그 피해가 돌아간다거나 하는 어떠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들어 '그 선생이 당시에 그러면 안 되었던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지금의 저보다 어렸던 그 시절의 담임 교사에게, 지금에 제가 무언가 이야기해줄 수 있다면  "사람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다면,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와중에도 본인이 책임진 대상이 다 사람이란 걸 잊진 말았어야지." 라는 조언을 남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한 경험의 배경은 학교, 학급이었지만 지금 제가 있는 곳은 일터입니다.  그리고 기업은 교육현장보다 더 이익집단의 성격이 강하며, 일은 수익활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선택의 이유와 근거는 실질적인 득과 실, 정량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 기본이 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일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여러 가지 방식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매니저와 구성원 간에든, 동료 간에든, 고객과 제공자 간에든, 프로덕트와 캐시를 주고받는 그 이상의 교류가 '일'에서 일어납니다.  나의 아침의 힘차고 따뜻한 한마디가 상대방의 하루를 만들 수 있고, 내가 이기적으로 뱉은 한마디가 동료의 마음에 십수 년간 남는 상처를 새길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 또한 가능하다는 것을,  그렇기에 사람을 매니징 하는 일을 맡았다면,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와중에도 나의 매니징의 대상이 '사람'이라는 것을 늘 강박적으로 챙기며 성장해나가고 싶습니다. - 주니어 PM의 생각 한 조각 (10) https://brunch.co.kr/@clipkey/44

콘텐츠를 더 읽고 싶다면?
원티드에 가입해 주세요.
로그인 후 모든 글을 볼 수 있습니다.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