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26 Be-ness. 행복, Happi-ness.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껴 흐뭇한 상태'라 한댄다. 매일 차고 넘치는 기쁨과 콧노래 절로 나오는 즐거움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음에도 '행복한가요?'라는 질문엔 자신있게 "네"하고 대답하지 못한다. 하늘과 넓게 맞닿은 한강이 내려다이는 높은 곳에 살고, 창문한쪽 열어 왼팔 하나 툭 걸칠 수 있는 고급스러운 차를 끌고. 또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VIP 새겨진 룸에 앉아 다리한 짝 꼬아 차 한잔 마시는 삶을 대단한 행복이라 여긴다. 언제 찍어냈는지도 모를 꼬깃한 지폐들이 웅크리고 있는 지갑이 아닌 모든 것이 다 되는 플라스틱 카드 하나로 원없이 긁어내기 바쁘다. 나의 실질 가치가 아닌 명목 가치만 업그레이드 되었음에도 어깨 으쓱하며 많은 이들이 보내는 부러움 가득찬 눈길에 큰 비용을 지불한다. 그래서 행복한가요? 네, 하고 대답할 수 있으나 내가 꿈꿔온 이상이 퍼즐에 딱 들어맞는 순간 그 퍼즐은 싫증나버린다. 더 어렵고 도전적이며 또 다른 굉장한 퍼즐을 찾아다니기 바쁘다. 순간에 훅 치고 들어오는 공허함을 받아내지 못하고 더 닿을 수 없는 혹은 아무도 따라오지 못할만큼 높은 꼭대기로 도망치기 바쁘다. 아래를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좋은 위치이긴 하다만, 그 주위엔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사랑할지 어떤 것을 행복이라 여길지 도통 보이지 않는다. '행복이란 멀리 있지 않아요.'하는 캐치 프레이즈 익히 보고 들었다만 머리털 새카만 어린시절 크게 공감하지는 못했었다. '먹고 싶은 것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또 사고 싶은 것도 많은데 대체 어디에 있는 거냐구요.'하며 불특정 대상을 원망하며 눈살 찌푸리기 바빴다. 하지만 먹고 싶었던 음식을 꿀꺽 넘기는 순간, 다른 것을 넘기길 열망하는 목구멍의 외침은 점점 더 커져갔더랬다. 좋은 옷을 걸치며 더 삐까뻔쩍한 비싼 옷을 두른다면 더 멋진 내가 될것만 같아 눈으로 캡처한 그 이미지에 일시불을 내 주었다. 허나 남은 것은 없었다. 나는 그대로 였기에. 사전이 나긋한 목소리로 읊는대로 행복이라는 것은 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것 그냥 그 자체다. 길바닥 꽁꽁 어는 추운 겨울 따뜻한 방바닥에 꼼지락대며 누워잘 수 있는 것, 두 팔과 다리로 일상을 느낄 수 있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 옆에 있을 수 있는 것 등. 이 모든 것을 행하고 있는 것이 결국 나의 복이되는 셈이다. 그냥 그 본질이라는 말이다. 며칠 전은 나의 저장소에 소중히 담아두었던 영화 '행복을 찾아서'를 N번째 보았던 날이었다. 유행이라곤 따라가기 어려운 지금과 같은 시대에 크리스 가드너는 기절초풍 그 잡채다. 면접장에 페인트 덕지덕지 묻은 청바지를 입은 채 등장하질 않나, 아들과 상상놀이를 하며 공용 화장실 바닥에 화장지 깔고 누워 잠 들질 않나. 또 교회의 도움으로 의식주를 겨우 해결하며 살아가는 그 모습들은 너무나도 고달프고 가슴 아프며 또 절실하기 그지 없었다. 그의 인생에는 너무나 많은 배움거리들이 보글보글 넘쳐났지만 무엇보다 지금 나 자신의 삶을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그 일상을 감사히 대하는 태도로 그 자체가 행복이 되었다. 어울리지 않는 과한 욕심은 내려놓고 만족할줄 알며, 조금 더 질 좋은 행복을 갈망하며 끝까지 밀어붙이는 그 였기에 일어설 수 있었고 또 다른 이들을 일어서게 할 수 있었다. 이처럼 행복은 그냥 내가 있는 곳, 내가 살아가는 것, 내가 느끼는 것. 이게 전부다. 어쩌면 아들 크리스토퍼가 다녔던 유치원 옆 벽에 써져있던 Happy-Ness는 Happ"i"로 변질되어가는 상태에 취하지 않고 고유한 상태 그대로가 행복 자체임을 말했던 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