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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 포트폴리오 봐주는 직속 상사 어때요? - "솔직히, 인사고과 평가자인 직속 상사에게 완전히 솔직할 수 있나요? 저는 없다고 생각해요." 팀장 시절, 시니어 팀원들과 함께 <실리콘밸리의 팀장들>을 읽고 완전한 솔직함에 대해 토론하던 중 한 팀원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팀원들도 동의하며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습니다. "이직하려고 포트폴리오랑 이력서 준비 중인데 생각보다 잘 안 돼서 스트레스 받는다고 상사와의 1on1에서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고 있으면 그게 더 문제 아닐까요?" 모두가 공감했는지, 회의실이 일시에 웃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저마저도 공감되는 이야기였습니다. 팀원들에게 완전한 솔직함을 얘기하는 저도, 저의 직속 상사에게 그러한 이야기를 솔직히 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책에서 말하는 지독하게 완벽한 솔직함은 '재택할 때 솔직히 업무시간 내내 잠만 자요.', '야근할 것 없는데 야근식대 쓰려고 1시간 딴짓하다 집에 가요.' 이런 얘기 정도는 나와야 하는 것 아닐까요? 하지만 이렇게 내 회사 생활을 평가하고, 연봉과 재직 기간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내 상사에게 이런 얘기해서 좋은 일이 일어날 리는 없잖아요? 상사에게 완벽하게 솔직한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 날 그 자리에서 저는 팀원들의 말에 명쾌한 답변을 하지 못하고 스터디를 마무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매니저가 구성원에게 솔직하게 피드백하기.'는 매니저 스스로가 노력하면 될 일이었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더 나아가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까지 팀원들이 이야기해준 것 자체가 회사라는 시스템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솔직함이 아닐까?'라는 생각과 함께 적당히 결론을 지어 고민을 끝내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래. 회사원이 자기 직속 상사에게 어떻게 완벽하게 솔직하겠어.'라는 생각은 너무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었습니다. 하지만 매니징에 대한 경험도 지식도 부족한 제가, 커리어적으로 한창 빛나야 할 연차의 팀원들에게 압축 성장할 수 있는 매일을 선물하려면 쉽게 할 수 있는 생각과 시도로는 안 될 터였기에 쉬운 결론을 내고 넘길 수는 없었습니다. 팀원들이 이야기한 '솔직할 수 없는 일들' 하나하나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왜 이직 포트폴리오와 이력서를 열심히 준비할까?' 뜯어 생각해보니 사실 이력서나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고 점검하는 것 자체가 '회사에 애정도 로열티도 없어서', '처우가 만족스럽지 않아서', '동료들이 미워서'와 같은 이유가 있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 회사에서 내가 있을 자리가 오래오래 튼튼히 남아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지 않아서, 시장 전체에서 나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내가 물경력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하기 위해서 등의 이유일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자 이 경우 오히려 팀원이 충분히 안정감을 가질 수 있게 고용 안정성에 대해 확신을 주거나, 이 팀에서 팀원이 낸 아웃풋을 전문적인 모습의 포트폴리오로 담아 보여줌으로서 이 팀에서 하고 있는 일들이, 이 산업군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도 당신에게 얼마나 큰 자산이 되는지 보여주는 게 팀원의 리텐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설령 회사에 애정이나 로열티가 떨어져서라고 해도, 그에 대한 이유는 조직이나 리더에게 있을 가능성이 클 것 같았습니다. 따라서 이직 준비하는 팀원의 의리를 탓하기 전에 리더인 나, 혹은 조직이 팀원에게 실망을 안길 때까지 목소리를 내지 않고 방치한 나의 잘못을 돌아보아야 할 것 같았습니다. 이 기업이 이 팀원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게 막고 있다면, 더 높은 역량을 내고 그에 따른 보상을 줄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면 되었습니다. 그리고 팀원에게 '당신의 역량이 지금 맡은 일에 비해 매우 뛰어나다는 걸 알고 있고, 그 역량을 펼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서 제가 계속해서 제안 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한동안은 조금 답답하더라도 내 약속을 믿고 기다려줄래요?'라고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경우 고맙게도 그 기간을 믿고 참아주곤 했습니다. 일어나고 있는 현상만으로 팀원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보다, 현상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이유를 묻고 해결책을 찾아가니 '솔직히, 상사에게 솔직할 수 없다.'라고 딱 잘라 이야기하던 팀원들이 어느샌가부터 정말 팀장에게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까지 솔직하게 해주고 있었습니다. 제게 포트폴리오 점검을 받으려고 이직하지 않는다는 모순적인 이야기도 듣게 되었고, 팀원이 소개해준 입사지원자와의 커피챗에서는 '친구들끼리 모인 술자리에서 상사 칭찬을 몇번씩 하길래 신기해서 와보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기도 했습니다. 정신차려보니 저는 팀원들의 포트폴리오를 피드백해주는, 회사에서는 문제아로 보일 이상한 팀장이 되어있었지만, 놀랍게도 제가 맡았던 팀은 팀 설립 후 제가 오프보딩할 때까지 제가 뽑은 모든 인원이 그대로 남아 저를 배웅해주었습니다. 물론 이는 정말 훌륭한 팀원들을 매니징하게 된 저의 복 덕분이 컸지만, 팀원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비교적 빠르게 듣고 대처할 수 있게 된 점이 그 나머지를 차지한다고 지금까지도 느낍니다. 아마 다른 유형의 조직, 다른 유형의 팀원들을 만났다면 저는 다른 결론을 낼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이 경험은 모두의 상황에 꼭 맞을 수는 없는 비즈니스 명저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수개월을 씨름한 끝에 '최소한 내 조직에는 적용할 수 있는 지독한 솔직함'을 찾아낸 경험이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좋은 책과 저의 이상한 고집, 그리고 우당탕탕 초보팀장의 성장통을 함께 겪어준 귀한 팀원들 덕분에 힘겹게 오른 한 계단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니어 PM의 생각 한 조각 (8) https://brunch.co.kr/@clipkey/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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