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기분'을 맞추는 것은 나의 의무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과의 협업을 통해서만 성과를 낼 수 있는 직무가 있습니다. 조직을 매니징하거나 프로젝트, 프로덕트를 관리하거나, 프로듀서, 디렉터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경우 그러하지요. 인사 또는 총무를 담당하시는 분들 또한 그러할 것입니다. 그리고 조직적, 시스템적, 업무 과정적인 서포트 못지 않게, 협업하는 구성원들이 업무를 진행할 때 자기 효능감, 안정감, 즐거움을 느끼도록 돕는 것이, 성과를 내는데 큰 역할을 하다보니, 협업이 많은 직무일수록 그 부분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업무적으로 상대의 좋은 점들을 최대한 이야기해서 사기를 올려주고, 고민을 들어 기분을 풀어주기도 하고, 신뢰 관계를 쌓을 수 있도록 여러가지 활동들을 함께 하기도 하지요. 저 역시 팀장 시절, 팀원들의 업무 외적인 고민으로 인해 업무가 진행이 안 될 때는 함께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옥상 정원에 누워 팀원의 연애 고민을 경청하기도 하고, 가족 문제로 우는 팀원을 위로해주는데 수 시간을 쓰고서 야근을 하는 등 구성원이 나누고 싶은 고민이라면 어떤 것이든 공감하고 나누어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데 힘쓰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업무를 최대한 빨리 업무를 진행시키고 높은 성과를 내고 싶은 저의 욕심에서 나온 전략일 뿐, 그 어떤 직무의 JD에도 '회사의 모든 사람 기분 맞추어주기'는 적혀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이러한 저의 전략이 당신들께 무기가 된다고 믿고 있는 협업 상대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무례하게 굴고도, 혹은 이 쪽에서 충분히 사무적이고 원칙적으로 사항을 전달했음에도, 개인적인 이유로 본인의 '기분이 상한 것'을 상대 파트너가 맞추어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ㅇㅇ님 앞으로 나랑 할 일이 많을텐데?" 라는 말과 함께 말씀하시는 당신의 '기분 좋지 않음.'을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사람으로서 그 자리가 불편해지기도 하고, 평소 몸에 베어있던, '일할 때는 모든 관계를 원만하게'라는 자세가 나도 모르게 그 감정받이 역할을 받아들이게 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 우리는 '왜 내가 함께 일하는 상대의 기분을 고려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답을 생각해내야 합니다. 본인의 사적인 '기분'이 공적인 영역의 '업무'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모인 곳에서, 누군가가 그 '기분'을 참아내느라고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을 도와주는 것이 첫번째 의도일 것이고, 유쾌한 관계 속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를 가질 때, 두려움 없이 더 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더 다양한 도전을 할 수 있게 된다거나 서류 소통보다 더 빠른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등의 다양한 추가 효과들이 그 뒤를 이을 것입니다. 그런데 애초에 '본인의 사적인 '기분'이 공적인 영역의 '업무'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는 전문가'라는 정체성을 상대가 망각하고 있거나, 혹은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부분을 돕고자 하는 의도와 맞지 않게 회사 동료나 상사, 부하직원을 감정 풀이 상대로 생각하게 된다면 그것은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하는 일일 것입니다. 나 하나 참는다고 끝난다면 조직 전체에 이 사람의 자세가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주니어이거나 동료라면 진지하게 아래와 같이 이유를 설명하며 시정을 요청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나와 함께 일하기 위해 기분을 맞추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도 안되고, 전반적인 업무 효율에도 도움이 일절 되지 않는 협박입니다. 상대방이 원치 않는 상황에서 상대를 당신의 감정풀이에 이용하는 것은 동료가 일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받으면서 업무 효율에 차질이 생길 수 있고, 함께 일하는 사이에 한쪽만 상대의 기분을 맞춰야 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개인적인 '기분'을 '업무'로 끌고 오지 않도록 노력하고, 스스로의 기분으로 인해 업무가 지장 받는 때라면 협박을 할 것이 아니라 도움을 요청할 때 업무가 더 원활해질 것입니다." 그 사람이 시니어이거나 매니저 역할을 맡고 있다면, 책임을 지는 자리에서 스스로가 현재 '기분 나쁘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행위에 대해, 다른 구성원들이 없는 자리에서 강하게 간언(諫言)드릴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윗사람이 '나랑 앞으로 할 일이 많을텐데'라는 말을 앞에 붙이는 것은 '앞으로 불편해지기 싫다면 이 요청을 따르라.'는 협박으로 받아들여질 것이고, 그것이 부당한 것이라도 참으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또한 실제로 '기분'이 나쁘셨더라도, 그것이 기업 문화나 기업의 이익 등 장기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 같이 보여서 기분이 나쁘셨는지 그냥 개인적인 취향에 맞지 않으셨거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나쁘셨던 기분이 더해져서 나쁘셨던 것인지 우선 판단해보셔야 합니다. 전자일 경우 '기분이 나빴다.'는 표현보다 '기업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피드백을 주시는 편이 훨씬 좋은 피드백입니다. 후자일 경우 말씀을 삼키셔야 합니다. 대표님으로 시작해서 아랫사람들을 감정 풀이 수단으로 쓰는 것이 우리 조직의 문화가 되는 순간 회사에 대한 애정과 리텐션에 지장이 감은 물론, 일을 하고 있는 직원들조차 자신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보다 훨씬 적은 퍼포먼스를 내게 될 것입니다." 라고 말입니다. 협업이 많은 직군의 JD에 적혀있는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가능자'란, 모두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잘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일에 정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방법을 상황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늘 되새기며, 협업자의 정서적인 부분을 케어하는 일과 감정받이가 되는 그 미묘한 선 사이를 어떻게 구분하고 현명하게 대응할 지 매일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됩니다. 주니어 PM의 생각 한 조각 (6) https://brunch.co.kr/@clipkey/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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