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책임지는 자리를 제안 받으면 이걸 살펴보세요." - 회사에서 제 역할을 해내기가 유독 힘들다고 느끼던 시기에, 답답한 마음에 멘토 분께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 질문을 드렸습니다. "새롭게 매니징하게 된 프로젝트는 전에 비해 유독 성과를 내기가 어렵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이전에는 전부 운이 좋았던 것 뿐이고, 이게 진짜 제 매니징 실력인 걸까요?" 창업 후 엑싯하신 경험, 규모 있는 스타트업에서 큰 조직을 이끌어보신 경험이 있던 멘토 분은 갑작스러운 전화에도 웃으면서 지금 공감이 필요하냐 해결책이 필요하냐 물으시고는 이렇게 답변해주셨습니다. "제가 엑싯할 때 들은 조언 중 하나가, 이끌거나 책임지는 자리에 새로 들어갈 땐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바운더리를 확보하고 들어가라는 얘기였어요." 이어지는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나에게 집을 설계하고 지을 역량이 있어도, 고객이 내 손에 익은 건축 도구들을 쓰지 못하게 한다거나, 나에게 전문이 아닌 유형의 집을 부탁한다거나, 집 짓기에 적합하지 않은 종류에 땅만 제공해주거나, 혹은 땅을 주지 않고 집을 지어 달라고 한다면, 아무리 훌륭한 역량을 갖고 있어도 좋은 집을 지어주지 못하겠지요. 집을 짓는데 비유하면 이 이야기가 당연하게 들리지만, 팀이나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을 때, 내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기와 환경이 내게 주어지는지 묻고 들어가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직접 직원들의 보상을 결정할 수 있는 상황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는 유형의 리더라면, 그 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요청 주신 사항을 성공적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제게 제 팀원들에 대한 연봉 협상권이 필요하다고, 그게 어렵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팀원들에게 제 권한으로 보상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드려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와 맞는 성향의 팀원들이 있어야 힘을 낼 수 있다면 팀 구성원을 직접 뽑을 수 있는 환경일지, 프로덕트의 전체적인 방향성을 관리하는 권한이 있어야 성과를 낼 수 있다면 제가 그 자리에 갔을 때 그 권한이 확실히 있을지, 평균적으로 3개월 정도 외부의 독촉 없이 차분히 팀을 세팅할 수 있는 기간이 주어질 때 저는 폭발적인 성과를 내곤 했는데 그 기간을 기다려주실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질문하고 확답을 듣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리더, 매니저 경험이 없다면 자신이 성과를 낼 수 있는 조건을 알기 어려울 수 있지만, 경험이 있고, 그 중에서도 성공 경험이 있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내가 집 지을 땅과 쓸 수 있는 도구를 확실히 하고 일을 받아야, 비로소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당시 성과를 충분히 내고 있지 못한 이유에 대해 진단을 부탁드렸을 때, 가장 편한 답변은 그저 저라는 사람의 역량이 크게 모자라서 그렇다고 하시는 것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시기보다는 제가 폭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상황에 놓이지 못한 것에서 원인을 찾고 조언 주신 것이 당시의 제게 큰 위로가 되었고 동시에 새로운 자리에 들어가면서 활용할 수 있는 권한들을 점검해야 한다는 사실에 있어서는 제가 무지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제가 무기로 쓸 수 있는 것들에 무엇이 있는지, 무기가 있기는 한 지, 없다면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 고민을 하는 것이, 새로운 책임을 지는 일보다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되었습니다. 작은 성공의 경험들과 작은 실패의 경험들을 지나, 이제는 이전 매니징에 대한 오답노트를 정리해두고, 동시에 제 강점에 대해서도 정확히 파악하고자 노력 중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책임을 질 기회를 만나게 되면 무슨 조건에서든 무작정 다 잘하겠다고 호기롭게 외치던 이전과 달리 앞으로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이러한 도구가 있을 때 멋진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 자리는 제가 이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자리일까요?" - 주니어 PM의 생각 한 조각 (5) https://brunch.co.kr/@clipkey/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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