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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7 - 시작이라는 밑그림. 손가락을 오른쪽으로 까딱이며 파도 타던 중 ‘핑계고’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정은, 이성민 배우를 보았다. 일면식도 없지만 그들을 떠올리면 ‘믿고보는 배우’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레 떠 올랐다. 스크린 하나라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대중과 두터운 신뢰감을 만들고 필모를 쌓아가는 발걸음을 지켜보며 ‘참 멋지다, 닮고 싶다, 대단하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배우라는 그들의 별은 꿈같은 시작을 안겨다 주지는 못했다. 연기천재는 그저 유능한 자들 옆에 따라다니는 범접할 수 없는 상표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쉬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다. 늦은 나이였지만 세상의 눈을 사기 시작했고 그렇게 지금의 미친 배우 자리에 앉았다. 우리가 가진 두 눈은 깊고 넓은 것을 담아내기엔 그 폭과 넓이의 한계가 있어 현재의 모습을 주로 포착하곤 한다. 그 모습으로 포착되기 위한 지난날의 노력과 시행착오의 과정을 보지는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Scene. 하나의 장면을 그리기 위한 시작점을 만들어야 하는 그 막막함을 그들은 이겨냈을 거다. 혹은 그 바탕지조차 없어 나무를 베어 그 목재를 펄핑하며 한 장의 종이부터 만들어 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뼈에 못 박는 노력이 필요했을 테다. 그렇게 잘 만든 하얀 종이를 책상 위에 펼쳐두고 그제야 연필을 잡는다. 수없이 그렸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간절한 마음으로 깊게 파인 연필 자국들이 쌓이며 밑바탕을 다져간다. 가까이서는 난도질되어있는 너덜한 종잇자락에 불과하지만 멀리서는 그리 잘 보이진 않는다. 어떤 그림을 그리고 팠는지 나만이 알 수 있고, 그게 나의 흔적이자 경험이라는 가치가 된다. 매일 빠짐없이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문득 ‘이거 하고 싶다’를 만나는 순간이 생긴다. 여기에 또 시간과 노력이라는 양분으로 확신이 생기면 볼펜으로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는 자신이 생긴다. 잘 보이는 것을 그릴 힘이 생겼음에도 가끔의 불안함과 막막함으로 볼펜을 던져버리고 싶을 때도 생길 수 있다. 그럼에도 매일의 끈을 놓아서는 안되며 그때, 내가 그려왔던 밑그림이 해결의 열쇠가 되어줄 것이다. 내가 만들어온 그 자취들이 지금의 그림을 이어 그리는데 힘이 되어줄 수도, 닦아놓은 길들로 지름길이 되어줄 수도 있는 까닭이다. 그냥 계속하는 것, 꾸준함은 그런 힘을 만들어준다. 흔들림 속에서도 중심을 잡아갈 수 있는 배터리를 장착해야 하기에 그 매일을 이어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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