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창작과를 나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학교에서 학보사를 경험한 것도 아니지만 난 언제나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었다. 졸업도 미루고 놀다가 아르바이트나 해볼까 싶어 지원한 곳이 엉겹결에 첫 직장이 되었는데, 하필 그곳이 서울을 대표하는 목동의 방송국. 하루 종일 뉴스룸을 들락거리며 쉴새 없이 타이핑하는 기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에서 가장 세련되고 쿨한 집단 같았고(어리석었다..) 멋진 그들처럼 진정성 있는 글이 쓰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글짓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전공을 택했다. 어른들은 나에게 창의력이 뛰어나고 발상하는 능력이 좋으니 디자인과를 가는 것이 어떠냐 했고, 나는 그것도 괜찮겠다며 쉽게 생각했다. 그렇게 고3을 앞두고 입시 전문 미술학원을 처음 찾았는데, 입시 미술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분야였다. 난 정말 더럽게 그림을 못 그렸고(진짜 더럽게 그림. 화판이 그냥 더러웠다) 실력은 아무리 해도 늘지 않았다. 나보다 훨씬 늦게 미술학원에 들어온 입시생들이 수시에 척척 합격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림 실력을 성적으로라도 메워야 한다는 생각에 아침 6시부터 새벽 3시까지 책상에 앉아 수능 준비를 했다. 예체능 계열로 수능을 치뤘기 때문에 1등급은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었다. 성적만 본다면 원하는 학교를 골라 갈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문제는 여전히 발전 없는 그림 실력. 실기를 보는 족족 불합격 통지서를 받으니 잔뜩 낙심한 나머지 마지막 학교에서는 밑그림만 그리고 나왔는데 이게 웬걸, 그만 붙어버렸다. 그렇게 어이없이 대학교를 다녔다. 전공 공부는 전부 날림으로 해서 기억 남는 건 하나도 없고, 영화가 너무 좋아 영화관 아르바이트만 최선을 다하다가 졸업 전시회를 제때 준비하지도 못해 졸업에 6년이 걸렸다. ​그즈음 아르바이트 뽑는 줄 알고 갔던 방송국에 덜컥 입사를 하게 되었고, 나도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지고 싶다는 마음을 키워가며 몇 년을 보내다가 몇 번의 이동 끝에 한 잡지사에 적을 두게 되었다. 잡지사에서 만난 기자, 그러니까 '에디터'라는 이들은 방송국 기자와 색깔이 달랐다. 누가 더 낫고 누가 덜하다는 말이 아니다. 색깔이 다르고 그들이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다. 그리고 나는 그 둘 모두에게 약간의 자격지심이 있었다. 막말로 저 에디터보다는 내가 훨씬 맛깔나게 쓸 것 같은데, 난 지원 부서이고 그들은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자이기 때문에 암묵적인 갑을 관계가 형성되는 느낌이었다. 장고 끝에, 언론학 석사를 받을 수 있는 대학원에 진학을 했다. (첨언하자면 결코 갈 필요가 없는 곳이었다. 배움에 대한 좋은 경험은 단 하나도 없고 너무나 지옥 같은 2년을 보냈다. 장점을 꼭 하나만 꼽자면 그때 경험이 너무너무 힘들고 또 힘들어서, 그 이후에 어떤 어려움이 와도 '이쯤이야! 순한 맛이네'하며 쉬이 넘기게 되었다는 것 정도?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이쪽도 썰을 풀어봐야지) 2년의 저승길을 버텨낸 뒤 진로를 고민하던 차에, 예전부터 함께 일하던 잡지사 선배의 제안을 받았고 마침내 그토록 바라던 콘텐츠 에디터가 될 수 있었다. 목적에 맞게 콘텐츠를 기획하고, 취재하고, 인터뷰하고, 내용을 정리해 유쾌하게 퍼블리싱하며 바이라인에 내 필명을 넣었다. 온라인 매체에서 글을 쓰다 보니 콘텐츠 진정성에 대한 의심은 언제나 함께 했지만, 그래도 나는 그 시간들이 정말로 행복했다. 즐거웠다. 1년, 2년이 지나자 나의 필명을 기억해 내 글을 팔로우 하는 팬들도 생겼다. 난 그들에게 더 재미있고 신선하게 정보를 전달해 주고 싶었다. 정말 많이 고민하고 시도했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문제는 '돈'이었다. 어른들의 사정으로 법인 설립 후 2년 만에 첫 인사평가가 있었다. 나는 그동안 글을 열심히 잘 썼(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콘텐츠 기획 능력도 두루 인정받아 평가 자체는 상당히 높게 받았다. 게다가 난 입사 전 약속했던 연봉에서 5%가 낮아진 연봉을 받던 중이다. 어느 정도 인상은 해주겠지, 기대하며 연봉 테이블을 앉은 나에게 선배는 그러나, 여전히 힘든 미디어 업계의 현실을 먼저 이야기하며 '그래도 네가 원하는 수준을 맞춰 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껏 모양을 내고는 새로운 연봉을 제시했다. ​ <4,017만원, 인상률 5.7%> 물가상승률을 우습게 보는 5.7%라는 얄궂은 지표가 왜 그리 눈에 띄던지. 연봉을 포함한 여러 이유로, 나는 결국 그곳을 떠나기로 했다. 선배가 대표로서 제시한 연봉은 다음 해에도 내가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야 한다는 의미였고, 하루살이 인생은 이제 그만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어느새 5년이 지났다. 어제는 오랜만에 함께 일한 전우들을 만나 서로의 근황을 물었다. 두 살 어린 후배 둘은 여전히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었고 여전히 높지 않은 처우에 불만이 많았다. 4시간에 거쳐 전 직장 뒷담화를 하다가 문득, 지금 그곳의 평균 연봉이 얼마일지 궁금해 찾아보았다.​ 예상평균연봉 4,776만원. 임원과 계약직 포함. ​.. 그렇게 하루살이들은 오늘도 하루만 산다. by.하루벌어하루살이 태어난 김에 한 사람 몫은 하고 싶어서 지나온 여정을 이야기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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