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노트: 일상에서 건져 올린 HR의 조각들 (2) – 관찰하고, 질문하고, 연결하는 실무자의 인사이트 기록 『영감노트』는 일상 속에서 인사(HR)의 본질과 방향을 고민해보는 칼럼 시리즈입니다.바쁜 실무 속에서도 잠시 멈춰 생각해보는 이 기록들이, 누군가에게 작은 인사이트로 닿기를 바랍니다.더불어 제 글에 대한 다른 생각이나 시선도 언제든 환영합니다. 오늘의 조각: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가 던진 질문, '진짜 불순분자'는 누구인가 평소 서바이벌 예능을 즐겨보는 편인데, 최근 특히 인상 깊게 본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바로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이라는 실험적 리얼리티입니다. 12명의 참가자가 정치, 젠더, 계급, 개방성 등 서로 다른 주제를 바탕으로 각자의 관점을 지닌 채 하나의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매일 리더를 뽑고 제도를 만들며 함께 살아가는 형식인데요. 단순한 서바이벌을 넘어, 이 프로그램은 공동체의 갈등과 조화, 권력과 대립, 신뢰와 불신의 역학을 날카롭게 비추는 프로그램입니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설정은, 이 커뮤니티 안에 단 한 명의 '불순분자'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불순분자'는 마지막 게임인 **'죄수의 딜레마'**의 룰을 알고 있지만, 다른 참가자들은 그 룰을 전혀 모른 채, 단지 **"불순분자가 있다"**는 사실만 안 상태로 커뮤니티 생활을 시작합니다.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불순분자'를 만든 건, 역할이 아니라 의심이었다 흥미롭게도, 커뮤니티를 흔든 건 정작 **'불순분자'**가 아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불순분자는 누구보다 평화롭고 협력적인 행동을 택했죠.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 게임에서 그는 커뮤니티를 망가뜨릴 필요가 없으니까요. 불순분자가 상금을 얻기 위해 필요한 건, 참가자들이 ‘끝까지 살아남은 상태’에서 서로를 믿지 못하게 만드는 것. 즉, 커뮤니티가 오래 유지될수록 불순분자에게는 더 유리합니다. 남아 있는 인원이 많을수록, 더 큰 금액을 두고 딜레마 상황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불순분자는 누구보다 협력적이었습니다. 퀴즈를 풀어 다른 참가자를 살리고, 룰을 꼼꼼히 숙지하며, 분란을 피하기 위해 말수를 줄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뮤니티는 불안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참가자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의심했고, 결국 누군가를 '불순분자'로 몰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불순분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공격하고 편을 갈라 분열을 일으키기까지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진짜 불순분자는 누구일까요? 주어진 룰에 따라 조용히 움직인 **'불순분자'**인가요? 아니면 불순분자가 아님에도 커뮤니티를 불안하게 만든 사람들일까요? 결국, '불순분자'라는 역할이라는 이유로 협력적이었던 인물은 탈락하고, 분란을 주도한 이들은 살아남습니다. '다름'을 경계하는 조직에서 변화가 가능할까 이 실험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조직과도 많이 닮아 있습니다. 조직 안에도 다양한 관점, 일하는 방식, 문제 해결 태도가 공존합니다. 문제는 그 다름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다름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질문이 많은 사람, 익숙한 방식을 거스르는 사람, 낯선 언어로 말하는 사람을 불편해합니다. '다르게 일하는 사람'을 조용히 밀어내곤 하죠. 그런데도, 조직이 진짜 변화와 혁신을 이루는 순간은 언제나 '불순해 보이는 존재'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던가요? 문제를 드러내고, 구조를 흔들고, 침묵 대신 발언을 택했던 이들 덕분에 관행이 바뀌고, 더 나은 방식이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불순분자'를 만드는 문화, 그리고 몰입을 가로막는 관행들 우리는 종종 말합니다. "요즘 직원들, 왜 이렇게 몰입을 못 할까?" 하지만 정말 그게 개인의 태도 문제일까요? '눈치 문화', '형식주의', '질문하지 못하는 분위기'… 이런 조직의 무의식적 관행들이 심리적 안전감을 허물고 있습니다. 심리적 안전감이란, "다르게 말해도, 실수해도 괜찮다"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침묵을 선택합니다. 정제된 말만 하고, 질문을 삼가고, 적당히 ‘맞춰주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몰입이 아닌 순응만을 얻게 됩니다. 몰입은 태도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조직이 다름을 용납하지 못한다면, 몰입은 시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 커뮤니티 속 한 토론 장면이 인상 깊어서 캡처해봤어요. 이미지 속 참여자의 글이 다소 길지만, 천천히 읽어보시면 깊이 생각해볼 만한 내용이 많습니다:) '컬처핏'보다 더 중요한 것 이런 몰입을 가로막는 관행 중 하나가 바로 ‘컬처핏’에 대한 과도한 집착일 수 있습니다. 한때 '컬처핏'은 좋은 조직문화의 상징이었습니다. 기존 문화와 잘 맞고, 조직에 ‘잘 섞이는 사람’을 선호했죠. 하지만 지금 필요한 건, 컬처 애드(Culture Add) — 즉 조직에 새로운 관점과 자극을 더해주는 사람입니다. 기존과 다른 질문을 던지는 사람, 불편함을 감수하며 제안하는 사람, 조직의 프레임을 확장하는 사람. 이들이 있을 때, 조직은 움직입니다. 그리고 이제 조직은 이들이 안전하게 존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결국, 함께 살아가야 하니까 다시 《더 커뮤니티》로 돌아가 봅시다. 불순분자를 내쫓은 커뮤니티는 과연 평화로워졌을까요? 놀랍게도, 이 게임에는 하나의 룰이 더 있었습니다. 바로 탈락한 불순분자가 '다음 불순분자'를 지정해야 한다는 룰. 이 룰은 어쩌면, 커뮤니티가 누군가를 불순분자로 몰아내는 한, 불순분자는 계속해서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치였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불순분자를 몰아낸 사람이 다음 불순분자로 지목됩니다. 커뮤니티는 자기 수준에 맞는 불순분자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셈인 거죠. 의심과 배척이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공동체는 결코 평화로워질 수 없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로 뭉쳐 보이지만, 내면에는 서로를 경계하는 기류가 흐르기 마련이죠. 진짜 변화는 누군가를 색출해내는 데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변화는, 서로의 다름을 견디고 끝내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에서 시작됩니다.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다름을 견디고, 불편함을 감수하며, 함께 존재할 수 있는 조직. 그런 조직 안에서야말로 진짜 몰입과 진짜 변화가 시작됩니다. “사람마다 사상과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각자 입장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다르고, 살아온 궤적이나 꿈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공동체엔 세련된 제도가 필요하다. 제도를 이행하는 성숙한 자세와 지성적인 이해도 중요하다.” —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불순분자’ 인터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