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균형점을 옮길 때 - <커리어 그리고 가정> : 경력과 가족, 선택이 아닌 구조의 문제 인사담당자로 여러 해 일을 하다 보니, 여러 사람에게 책을 선물받거나 추천받는 일이 많습니다. 클라우디아 골딘(Claudia Goldin)의 『Career and Family (커리어 그리고 가정)』은 그런 책 중 하나였는데요, 우연히 서로 다른 3명에게 이 책을 추천 받아,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책 제목에서 주는 이미지처럼, 아직 한국 사회에서 성평등에 대한 이야기는 뜨겁고도 여전히 터부시되는 주제인 것 같아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HR북스터디에 발제하게 됐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노동 경제학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단순한 경제학 책은 아닙니다. 미국의 세대별 여성들이 일과 가정 사이에서 겪은 선택과 제약을 추적하며, 성별 임금 격차와 경력 단절의 이면을 인문 경제학적 관점에서 성찰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사담당자로서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우리 조직은 인재가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는가?” 였습니다. 이 책은 많은 조직이 여전히 놓치고 있는 질문이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명확히 통찰합니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선택의 자유”가 진짜 자유가 되려면 클라우디아 골딘은 여성들이 경력을 쌓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선택”이 실제로는 구조적 제약 속에서의 제로섬게임임을 지적합니다. 커리어를 중시하면 가족에 대한 헌신이 부족하다는 비난을 받고, 가족을 우선하면 ‘덜 야망 있는 사람’으로 분류되는 이중 잣대는 한국 사회에서도 익숙한 풍경입니다. 이러한 현실은 결국 여성의 경력 연속성을 약화시키고, 조직 내 다양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중요한 점은 단지 휴가를 늘리고, 여성 임직원의 숫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일과 삶을 조화롭게 설계할 수 있도록 제도적, 문화적 인프라를 만드는 일입니다. 핵심은 '선택의 자유'가 진정한 자유로 기능하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입니다. DEI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DEI(Diversity, Equity, Inclusion)는 이제 단순한 윤리적 명제가 아니라, 조직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 경영 전략입니다. 특히 한국처럼 급속한 고령화와 인력 부족 문제에 직면한 사회에서는 여성을 비롯한 다양한 배경의 인재들이 온전히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곧 기업의 경쟁력입니다. 골딘의 연구는 “왜 여성의 진출은 늘었는데, 리더십으로의 진입은 더딘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많은 조직이 여성 인재의 채용과 육성에 투자하고 있지만, 여전히 리더십 계층에서는 여성 비율이 현저히 낮습니다. 이는 여성의 ‘의지 부족’이 아니라, 커리어와 가족을 병행할 수 없는 구조가 만든 결과입니다. 골딘은 이를 "구조적으로 설계된 희생의 공식"이라고 말합니다. 장시간 노동과 시간 기반 성과 평가, 돌봄 책임의 편중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면서 특정 인재군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직의 자산을 온전히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명백한 비즈니스 손실입니다. HR이 해야할 질문 인사담당자로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 우리 조직의 육아휴직이나 유연근무제가 진짜 ‘경력 단절 방지’ 기능을 하고 있는가? ▶ 우리 조직 내 승진 기준이 여전히 장시간 노동이나 빈번한 출장에 편향되어 있지 않은가? ▶ 돌봄 책임을 공유하지 않는 문화를 방치함으로써 무언의 차별을 조장하고 있지 않은가? 이 질문들은 단순히 제도를 점검하는 것을 넘어서, ‘경력의 연속성’을 실제로 방해하는 구조가 무엇인지 인지하게 하고 해결하는데 핵심이 됩니다. 변화는 문화에서 시작된다 제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조직의 구성원 모두가 돌봄과 일의 균형을 여성의 문제가 아닌 모든 성별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경력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합니다. 여성 직원이 빠진 회의가 당연하지 않게 되고, 육아휴직을 쓰는 남성 직원이 칭찬이 아닌 보편적인 선택으로 여겨지는 날이 오면, 우리는 진정한 DEI를 실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Career and Family (커리어 그리고 가정)』는 과거의 데이터로 오늘을 설명하고, 미래의 과제를 제시하는 책입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매우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이제는 단지 ‘이직률을 낮추자’가 아니라, ‘모든 인재가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경력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전략적 전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