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독서 모임에서 지난 9월에 <평균의 종말>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는 ADHD 장애 판정을 받아 소위 '문제아'로 낙인 찍혔던 저자가 결국 하버드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까지 된 경험을 바탕으로, 평균주의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개인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요. 평균주의와 테일러주의가 가진 유구한 역사를 소개하면서, 그것들에 도전하는 여러 기업들의 시도 또한 소개하고 있는데, 직원 채용 방식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직무의 최적임자를 찾는 문제에 관한 한 기업계의 모든 시스템은 맥락을 무시하도록 짜여 있으며 그 초반 과정부터 지극히 본질주의적인 채용 도구를 내세운다." (토드 로즈, <평균의 종말>, p.171) 대표적인 예시로 너무나도 익숙한 양식의, 필수 경력 연수나 자격 등이 기술되어 있는 직무 설명서가 나와 있더라구요. 이러한 도구가 직무의 수행력이나 직무 수행이 행해질 맥락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었습니다. 오히려 인사담당자 포지션에 관련 경력이 전무한 약사를 선발해서 긍정적인 결과를 거두었다는 다소 극단적인 듯 보이는 사례와 함께 말이에요. 당연히 저 또한 채용담당자로서 지금까지 무슨 내용으로 채용 공고를 냈고, 어떠한 기준으로 이력서를 스크리닝했고, Hiring Manager들이 어떻게 판단했는지를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지금 제가 몸담고 있는 곳은 아래와 같은 특성들이 채용 실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왔습니다. 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기업으로서, 사업 확장으로 인한 신규 포지션뿐 아니라 대체 인원을 선발하는 부분까지 모든 채용은 본사의 승인이 있어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엔지니어는 물론 영업직까지도 산업군 특성 상 기술적인 지식 (특히 전기/전자공학, 소프트웨어 분야) 을 요하고 있습니다. 기술영업 직군의 비중이 높은 곳이기에, 채용하는 포지션 대부분이 고객사들과 비즈니스를 확장해가거나 더욱 밀접하게 기술적인 지원을 제공해야 합니다. 입사해서 빠른 시일 내에 고객사와 소통할 수 있으려면, 관련 경험이 필수적이라고 생각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지금까지는 동일한 직무를 경험해본 경력자를 채용하는 빈도가 훨씬 많았습니다. Hiring Manager 입장에서는 경력자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슷하거나 동일한 업무를 해본 경험이 있어 업무의 이해도가 이미 충분하다고 판단되기에, 직무 교육에 필요한 시간이 비약적으로 단축됩니다. 이에 따라 채용 포지션이 요구하는 기대 수준의 gap이 매우 적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같은 업계에 몸담았기 때문에 산업 및 시장 트렌드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내부 직원이 추천한 경우라면, 추천인을 통해서 우리 조직에 대해 이미 이해하고 있어 더 빠른 시일 내에 조직에 적응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추천인의 존재는 로열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사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납득이 가는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에 동일한 방식으로 채용했을 때 성공을 거두어 이 관점이 더욱 강화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편으로 분명 놓칠 수 있을 만한 부분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력서에 기술된 내용이 포지션과 적합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되거나, 추천인이 직무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했다면, Hiring Manager는 후보자의 역량에 대해 이미 확신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미리 결정을 내린 매니저의 태도가 전형을 루즈한 분위기에서 형식적이게 만들 수 있는 점을 조심해야 합니다. 업무의 디테일과 역량을 묻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해보았는지 여부를 체크하는 식의 질문으로는 실제 후보자의 업무 역량이나 Culture-fit을 확인하기에 매우 제한적입니다. 당장의 직무를 맡아줄 수 있는 사람을 뽑는 방향으로 집중하면, 추후 몇 년 내에 오게 될 시장변화에 대처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미래 시점에서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인지, 다음 단계를 항상 고려해야 합니다. 무조건 경력자 위주의 채용으로 흘러가면, 필수적으로 조직의 평균 연령이 증가하게 됩니다. 물론 연령이 채용을 결정하는 주 조건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팀을 다양한 구성원으로 지속가능하게 조직하기 위해서는 세대와 경력을 적절히 고려해야 합니다. 채용의 결정은 결국 함께 일하게 될 매니저의 몫이지만, 채용담당자는 실제로 그 과정이 합리적이지 않은 요인의 영향을 받는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수준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는지 체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채용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이 부분을 충분히 매니저와 협의해야 하며,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볼 여지가 없을지 계속해서 challenge하는 것 또한 고려해야 합니다. 경력과 명시적 조건에 안주하는 길은 생각해보면 너무 쉬운 길일지 모릅니다. 돌아서 가더라도 장기적인 관점과 방향성을 놓지 않는 것이 HR의 역할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