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 가지 역사 속 인사이야기, 人事萬史 ] 이제 상앙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상앙을 지지해주고 그의 힘이 되어주었던 진효공이 불과 44살의 나이에 죽고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비나 조비, 조예 등과 달리 죽으며 상앙에게 죽고나서도 쓰일 큰힘을 주진 않았습니다.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후계자가 어리면 믿을만한 신하를 불러 탁고(고아를 부탁한다는 의미입니다.)를 하며 신하를 맡깁니다. 제갈량과 사마의가 혼란한 와중에도 신하로서 큰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선왕이 남겨준 무지막지한 권위에 힘입은 것이었습니다. 물론 뒤를 이은 혜문왕(더 강성해진 후 혜문왕 중기부터는 진나라 군주가 왕을 칭하게 됩니다.)이 장성한 이유도 있었지만 슬슬 커질대로 커진 상앙의 힘을 진효공 스스로가 견제하고자 했을 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지난 20여년 간의 강력한 변법으로 인해 상앙의 적은 너무나 많았습니다. 리더의 칼을 자초한 2인자의 숙명입니다. 그 중 새 리더의 자리에 오른 혜문왕 또한 상앙의 적이었습니다. 혜문왕이 어릴때 법을 어기는 일이 있었는데 상앙은 엄벌을 요청하며 태자를 죽일 순 없으니 태자의 스승이자 진효공의 형이었던 공자 건의 코를 자르고, 또다른 스승이던 공손가에게 묵형을 내려버립니다. 두 형벌 모두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게 하는 엄벌이었습니다. 혜문왕은 어린 날, 자신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큰아버지와 스승에게 벌을 내린 상앙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앙의 적은 혜문왕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대대적인 노예 해방이후 사병과 노예가 없어진 귀족들은 그를 증오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전장에서 목을많이 베어온 백성들이 급수가 높아져 귀족의 자리를 넘볼 정도가 되자 이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하였습니다. 개혁의 먼발치에 있던 원로 대신들의 불만을 읽은 혜문왕은 이들을 이용하기로 합니다. 그는 원로들을 불러 상앙의 죄를 열거하고 그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습니다. 원로들의 대답은 정해져있었습니다. 모두 상앙을 죽이라고 청하는 목소리를 뒤로 하고 혜문왕은 상앙을 체포할 것을 명합니다. 하루아침에 역적이 된 상앙은 일단 타국으로 망명해 목숨이라도 건지려 합니다. 그는 급히 국경인 함곡관을 넘어 위나라로 도망가고자 하지만 자신이 어떤 말을 해도 함곡관의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가 세운 진나라 법에 성문은 첫 새벽닭이 울어야만 열 수 있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성문을 넘으려는 자가 있으면 목을 베어야 했습니다. 그게 왕이나 상앙 자신일지라도 말이죠. 결국 상앙은 인근 민가에서 잠을 잔 후 아침 일찍 나가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관에서 발급한 여행증 없이는 누구도 진나라 여관이나 민가에 투숙할 수 없었습니다. 첩자를 막기 위해 역시 상앙이 정한 법 떄문이었습니다. 결국 상앙은 자신이 정한 법 때문에 죽을 위기에 처했지만 아직 하늘이 상앙을 버린게 아닌지 어찌어찌 그는 추격군을 따돌리고 위나라로 망명합니다. 하지만 위나라 사람들은 지난 날, 상앙이 자신의 은인이자 친구인 공자 앙을 속여 위나라 땅을 정복한 일을 기억하고선 그를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눈치챈 상앙이 다른 나라로 떠나려고하자 위나라 사람들은 진나라의 보복을 두려워해 상앙을 잡아 진나라로 보냅니다. 결국 상앙은 자신의 봉지였던 '상' 땅으로 가 군대를 모아 이웃 정나라를 공격해 차지할 욕심을 가집니다. 하지만 상앙이 키웠던 강력한 진나라 군대가 상앙의 군대를 들이쳤고 결국 그는 잡히고 맙니다. 상앙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사실 무슨 생각이 들기도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상황을 만든 것은 자기 자신이었으니까요. 상앙은 결국 거열형(사극에서 나오는 소와 말이 사지와 목을 잡고 끌어 온몸을 찢는 형벌입니다.)을 당하고 말고 그의 가족은 연좌되어 삼족이 멸해집니다. 역적에게 거열형을 가하고 삼족을 멸하는 것 또한 상앙이 정한 법입니다. 자신이 세운 법에 자신이 당한 꼴이라니, 기요틴 박사가 생각나기도 하지만 스케일이 다릅니다. 그럼 진나라의 변법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혜문왕은 상앙은 상앙이고, 변법은 변법이다. 변법없이 진나라가 어찌 클 수 있었겠는가. 하며 변법 철폐를 원하던 원로대신들을 당황하게 만듭니다. 그러면서 혜문왕은 변법의 철폐를 논하는 자 또한 상앙과 똑같이 처리하겠다고 일갈합니다. 결국 혜문왕은 변법은 변법대로 지키고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상앙이라는 권력자는 제거했으며, 미래의 위험 요소인 원로 대신들마저 한 번에 정리한 것입니다. 불과 스물이 갓 넘은 군주치고는 엄청난 역량이지요. 혜문왕 대에 진나라는 크게 발전해 사천 지방을 정복하는 한편, 이전에 공략했던 하서 전체를 확고한 세력권으로 굳혔습니다. 이후 진나라는 전국7웅중 가장 강력한 국가로 드디어 발돋움하게 됩니다. 상앙은 리더의 2인자였습니다. 그는 리더의 칼로 조직의 썩은 부분을 제거하고 단시간 내에 끌어올린 엄청난 인재입니다. 하지만 진효공이 만약 오래 살았다고해도 상앙이 무사했을까요? 저는 상앙은 언젠가 제거당했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직의 2인자라면 스스로 겸허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적이 많았던 걸 생각해보면 상앙은 그렇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상앙은 필요 이상으로 적을 만들었고 주변의 현자들이 은퇴를 권고했을 떄에도 고집을 부려 이를 무시했습니다. 만약 진효공이 아직 살아있을 떄 상앙이 스스로 물러났다면 혜문왕이 즉위하였어도 상앙을 죽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앙은 욕심을 버리지 않았기에 결국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어느 조직에나 2인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언제나 적들은 늘어납니다. 다만 그걸 눈치채지 못할 뿐이죠. 만약 상앙이 유선같이 멍청하고 게으른 군주와 함께 했다제갈량보다 더 뛰어난 평가를 받았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혜문왕은 똑똑하고 부지런한 리더였고 역시 똑똑하고 부지런했던, 하지만 오만방자했던 상앙은 결국 몸이 찢겨 죽었습니다. 상앙과 제갈량, 둘 중 누가 될 것인지 판단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동료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 화에서는 1,2,3편을 다시 훑어보면서 상앙이 주는 인사관리의 교훈을 되짚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