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표이사는 조직문화를 구원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아무리 퇴사를 해도, 조직은 굴러가요. 그게 조직이니까. 그러니까, 사람들이 퇴사한다고 조직문화가 바뀌거나 그런 일은 없어요. 조직문화는 대표이사가 전부예요, 대표이사가 변해야지, 안 그러면 답이 없어요” 최근 어떤 지인과 나눴던 이야기다. (분명히 밝혀두건대, 이 지인은 절대 회사 동료가 아니다. 물론, 내가 한 말도 아니다) 조직문화는 대표이사가 전부라는 말. 조직문화 업무를 하면서, 조직문화 관련된 사람들을 만났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고, 가장 많이 했던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결말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사람이 없기 때문에, 결국 모든 일은 무의미하다는 슬픈 결말을 맞는다. 우리는 이 결말을 그대로 내버려 두어도 괜찮은 것일까? 대표이사가 전부라는 말에, 조심스럽게 되물어 본다. 그렇다면 대표이사만이 우리의 조직문화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일까? ‘누운 배’라는 소설이 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의 중견 조선소 이야기다. 제목처럼 이 소설은 진수식까지 마친, 자동차 6,700대를 실을 수 있는 거대한 컨테이너선이 옆으로 눕는 사고에서 시작한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소설 속 자기 이익만을 쫓는 사람들은 고구마를 백만 개쯤 먹은 것 같은 답답함에 분노를 살포시 얹어 저세상 스트레스를 선물하는 동시에, 이 회사의 끝을 반드시 보고야 말겠노라는 오기를 불러일으켜, 소설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조직문화가 노답인 이 회사에, 드디어 새로운 대표이사가 취임한다. 대표이사는 조선업에 전문성이 매우 높고, 스마트하고, 합리적이며, 열정적인 전문 경영인이다. 신임 대표이사의 임원들을 향한 일갈과 질책은 마치 까스활명수와 겔포스를 동시에 먹은 느낌이어서, 그동안 가슴속에 쌓였던 고구마들을 한 방에 날려 보낸다… 하지만, 그런 대표이사도 결국 이 회사를 바꾸는데 실패한다. 방향은 옳았으되 동지를 얻지 못했고, 이성과 논리라는 칼바람으로 사람들의 옷을 한 겹 정도는 벗겼으되, 태양처럼 사람들이 옷을 스스로 벗게 만들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문화라는 것이 사람들이 모여서 생겨나는 것임을 이해한다면, 조직의 문화도 <네이키드 애자일>이란 책에서 설명하듯, ‘경영의 모든 구성요소 간의 상호작용’이기에, 조직 전체가 함께 해야 만들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래서, 원래 하려던 이야기로 돌아가면, 대표이사가 조직문화를 만들거나 바꾸는데 매우 매우 중요한 사람인 것은 맞지만, 대표이사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뜻이고, ‘조직문화’를 만드는 실무자들의 일과 노력이 절대 가치가 없거나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2. 실무자가 조직문화를 2% 바꾸는 방법 그래서 이번 원티드에서 개최한 조직문화 컨퍼런스에서 실무자 관점으로 조직문화에 기여하는 방법에 대해 여러 사례를 들어 공유했는데, 핵심은 아래 3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과도한 책임감에서 벗어나자! 우습게도, 첫 이야기는 실무자들의 정신승리에 대한 이야기다. 실무자의 권한과 영향력의 범위는 작다.(하지만,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데, 조직문화에 대한 책임감을 과하게 가지는 분들이 있다. 사실 내 이야기인데, R&R대비 과도한 책임감을 느끼다 보니 나 스스로가 하는 일의 의미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혹시나 나와 비슷한 분이 계신다면, 과도한 책임감에서 벗어나자고 말씀드리고 싶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조직문화는 조직 전체의 책임이다. 또한 결과가 나타나는 속도가 매우 느리다. 급하게 결과를 얻으려고 하면 쉽게 지친다. 자신의 R&R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되, 길게 갈 수 있는 호흡과 여유가 필요하다. 둘째, 조직문화가 아닌 개인의 경험에 집중하자! 미담을 하나 공유해야겠다. 우리 회사에 있는 멋진 부문장님에 대한 이야기다. 회사에 스탠딩 데스크가 몇 개가 있는데, 이 데스크는 주로 허리 아픈 분들이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통상 직급이 높은 분들이 대개 허리가 많이 아프시다. 충분히 개연성 있으니 굳이 다른 해석을 시도하진 말자. 그런데, 같은 층에 근무하는 한 부문장(팀장님 보다 한 직급 높은 분)께서 옆에 앉은 주니어 정도 되는 팀원이 허리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고 책상을 바꿔 주셨다. 그래서 부모님께서 주신 튼튼한 허리 덕분에 감사하게 한 번도 써보지 못한 스탠딩 책상을, 그 팀원분은 파워 당당하게 사용하고 계신다. 이 얼마나 굉장히 아름다운 미담인가! 그 이야기를 듣고, 문득 우리가 조직의 문화를 조직문화라는 단어로, 몇 개의 키워드로 단순화해서 평균적으로 표현 또는 설명하지만, 사실 조직문화에 대한 경험은 매우 개인적이고 개별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실제로 빨간색 B로고의 익명게시판 앱에 가서 회사 평가를 보면, 거의 대부분의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평가가 별 1개에서 별 5개까지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한 평점들이 모여서 평균이 되고, 그 평균들의 점수를 가지고 회사들이 비교되고 있지만, 사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조직문화에 대한 경험과 평가는 사람마다 매우 다른 것이다. 그래서 내가 얻은 결론은 이런 것이다. 조직의 문화는 바꾸기 어렵지만 개인의 경험을 바꾸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개인들의 경험이 모여 조직문화가 되므로, 조직문화를 바꾸려 하기보다, 동료들의 경험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자! 셋째, 동료를 만들자. 2년쯤 전, 부문 회의 문화를 바꾸고 싶어서 도전한 적이 있다. 매주 부문장님과 각 팀의 팀장 및 선임들이 모여서 하는 주간회의였는데. ‘일’은 부문의 모든 사람들이 같이 하는데, 회의는 모두가 함께 하지 않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파일럿’이라는 이름을 달고 1달간 부문 회의에 모두를 참여시키는 실험을 했는데, 결국 실패로 끝났다. 회고를 해 보니,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왜 그 회의를 함께 해야 하는지에 대해 부문 내 동료들의 공감대를 얻지 못했던 것, 동료들의 의견은 다를 수 있는데, 내가 답을 정해놓고 시도했던 것 등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원인은 혼자서 동료들에게 읍소해서 회의에 참여시켜야 하는데서 오는 마음의 상처였다. 제풀에 지쳤던 것이다. 그때 알았다. 가장 큰 실패 원인은 ‘함께 할 동료의 부재’였음을.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속담처럼,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중요하다’는 말처럼, 변화에는 반드시 동료와 연대가 필요하다. 그렇게 회사의 모든 실무자들이 각자의 2%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그것이 연대할 때, 그 최선들이 모여 조직문화가 100%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3. 동료가 경험하는 ‘내가’ 조직문화다. 예전에 회사에서 어떤 교육을 하는 중에, 한 분이 이런 질문을 했다. “이렇게 새로운 방식을 배워도, 윗분들(팀장님들)이 안 변하면 아무 소용없는 것 아닌가요?” 예전에 어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면서 설명회를 하는 자리에서, 어떤 팀장이 이런 말을 했다. “제발 윗분들(임원)부터 먼저 좀 지키라고 해주세요" 팀원은 팀장을 탓하고, 팀장은 임원을 탓하고, 임원은 대표이사를 탓하고, 대표이사는 변하지 않는 직원들을 탓한다. 모두가 남 탓을 하는 이 뫼비우스의 띠 같은 순환을 끊어내는 유일한 칼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그리고 우리다. ‘나 자신’이 내가 만들고 싶은 바로 ‘그 문화’가 되는 것. 그것만이 실무자가 조직문화를 만들거나 바꿀 수 있는 유일하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그 스탠딩 책상을 사용하는 팀원에게는 그 부문장님의 양보와 배려가 회사의 조직문화인 것처럼. 오늘 이 순간, 내 바로 옆 동료가 경험하는 ‘내가’ 곧 회사의 조직문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