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가 경험하는 ‘내가’ 조직문화다
****1. 대표이사는 조직문화를 구원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아무리 퇴사를 해도, 조직은 굴러가요. 그게 조직이니까. 그러니까, 사람들이 퇴사한다고 조직문화가 바뀌거나 그런 일은 없어요. 조직문화는 대표이사가 전부예요, 대표이사가 변해야지, 안 그러면 답이 없어요” 최근 어떤 지인과 나눴던 이야기다. (분명히 밝혀두건대, 이 지인은 절대 회사 동료가 아니다. 물론, 내가 한 말도 아니다)
조직문화는 대표이사가 전부라는 말. 조직문화 업무를 하면서, 조직문화 관련된 사람들을 만났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고, 가장 많이 했던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결말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사람이 없기 때문에, 결국 모든 일은 무의미하다는 슬픈 결말을 맞는다. 우리는 이 결말을 그대로 내버려 두어도 괜찮은 것일까?
대표이사가 전부라는 말에, 조심스럽게 되물어 본다. 그렇다면 대표이사만이 우리의 조직문화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일까?
‘누운 배’라는 소설이 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의 중견 조선소 이야기다. 제목처럼 이 소설은 진수식까지 마친, 자동차 6,700대를 실을 수 있는 거대한 컨테이너선이 옆으로 눕는 사고에서 시작한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소설 속 자기 이익만을 쫓는 사람들은 고구마를 백만 개쯤 먹은 것 같은 답답함에 분노를 살포시 얹어 저세상 스트레스를 선물하는 동시에, 이 회사의 끝을 반드시 보고야 말겠노라는 오기를 불러일으켜, 소설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조직문화가 노답인 이 회사에, 드디어 새로운 대표이사가 취임한다. 대표이사는 조선업에 전문성이 매우 높고, 스마트하고, 합리적이며, 열정적인 전문 경영인이다. 신임 대표이사의 임원들을 향한 일갈과 질책은 마치 까스활명수와 겔포스를 동시에 먹은 느낌이어서, 그동안 가슴속에 쌓였던 고구마들을 한 방에 날려 보낸다… 하지만, 그런 대표이사도 결국 이 회사를 바꾸는데 실패한다. 방향은 옳았으되 동지를 얻지 못했고, 이성과 논리라는 칼바람으로 사람들의 옷을 한 겹 정도는 벗겼으되, 태양처럼 사람들이 옷을 스스로 벗게 만들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문화라는 것이 사람들이 모여서 생겨나는 것임을 이해한다면, 조직의 문화도 <네이키드 애자일>이란 책에서 설명하듯, ‘경영의 모든 구성요소 간의 상호작용’이기에, 조직 전체가 함께 해야 만들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래서, 원래 하려던 이야기로 돌아가면, 대표이사가 조직문화를 만들거나 바꾸는데 매우 매우 중요한 사람인 것은 맞지만, 대표이사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뜻이고, ‘조직문화’를 만드는 실무자들의 일과 노력이 절대 가치가 없거나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2. 실무자가 조직문화를 2% 바꾸는 방법
그래서 이번 원티드에서 개최한 조직문화 컨퍼런스에서 실무자 관점으로 조직문화에 기여하는 방법에 대해 여러 사례를 들어 공유했는데, 핵심은 아래 3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과도한 책임감에서 벗어나자!
우습게도, 첫 이야기는 실무자들의 정신승리에 대한 이야기다. 실무자의 권한과 영향력의 범위는 작다.(하지만,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데, 조직문화에 대한 책임감을 과하게 가지는 분들이 있다. 사실 내 이야기인데, R&R대비 과도한 책임감을 느끼다 보니 나 스스로가 하는 일의 의미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혹시나 나와 비슷한 분이 계신다면, 과도한 책임감에서 벗어나자고 말씀드리고 싶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조직문화는 조직 전체의 책임이다. 또한 결과가 나타나는 속도가 매우 느리다. 급하게 결과를 얻으려고 하면 쉽게 지친다. 자신의 R&R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되, 길게 갈 수 있는 호흡과 여유가 필요하다.
둘째, 조직문화가 아닌 개인의 경험에 집중하자!
미담을 하나 공유해야겠다. 우리 회사에 있는 멋진 부문장님에 대한 이야기다. 회사에 스탠딩 데스크가 몇 개가 있는데, 이 데스크는 주로 허리 아픈 분들이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통상 직급이 높은 분들이 대개 허리가 많이 아프시다. 충분히 개연성 있으니 굳이 다른 해석을 시도하진 말자.
그런데, 같은 층에 근무하는 한 부문장(팀장님 보다 한 직급 높은 분)께서 옆에 앉은 주니어 정도 되는 팀원이 허리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고 책상을 바꿔 주셨다. 그래서 부모님께서 주신 튼튼한 허리 덕분에 감사하게 한 번도 써보지 못한 스탠딩 책상을, 그 팀원분은 파워 당당하게 사용하고 계신다. 이 얼마나 굉장히 아름다운 미담인가!
그 이야기를 듣고, 문득 우리가 조직의 문화를 조직문화라는 단어로, 몇 개의 키워드로 단순화해서 평균적으로 표현 또는 설명하지만, 사실 조직문화에 대한 경험은 매우 개인적이고 개별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실제로 빨간색 B로고의 익명게시판 앱에 가서 회사 평가를 보면, 거의 대부분의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평가가 별 1개에서 별 5개까지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한 평점들이 모여서 평균이 되고, 그 평균들의 점수를 가지고 회사들이 비교되고 있지만, 사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조직문화에 대한 경험과 평가는 사람마다 매우 다른 것이다.
그래서 내가 얻은 결론은 이런 것이다. 조직의 문화는 바꾸기 어렵지만 개인의 경험을 바꾸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개인들의 경험이 모여 조직문화가 되므로, 조직문화를 바꾸려 하기보다, 동료들의 경험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자!
셋째, 동료를 만들자.
2년쯤 전, 부문 회의 문화를 바꾸고 싶어서 도전한 적이 있다. 매주 부문장님과 각 팀의 팀장 및 선임들이 모여서 하는 주간회의였는데. ‘일’은 부문의 모든 사람들이 같이 하는데, 회의는 모두가 함께 하지 않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파일럿’이라는 이름을 달고 1달간 부문 회의에 모두를 참여시키는 실험을 했는데, 결국 실패로 끝났다.
회고를 해 보니,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왜 그 회의를 함께 해야 하는지에 대해 부문 내 동료들의 공감대를 얻지 못했던 것, 동료들의 의견은 다를 수 있는데, 내가 답을 정해놓고 시도했던 것 등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원인은 혼자서 동료들에게 읍소해서 회의에 참여시켜야 하는데서 오는 마음의 상처였다. 제풀에 지쳤던 것이다. 그때 알았다. 가장 큰 실패 원인은 ‘함께 할 동료의 부재’였음을.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속담처럼,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중요하다’는 말처럼, 변화에는 반드시 동료와 연대가 필요하다. 그렇게 회사의 모든 실무자들이 각자의 2%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그것이 연대할 때, 그 최선들이 모여 조직문화가 100%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3. 동료가 경험하는 ‘내가’ 조직문화다.
예전에 회사에서 어떤 교육을 하는 중에, 한 분이 이런 질문을 했다. “이렇게 새로운 방식을 배워도, 윗분들(팀장님들)이 안 변하면 아무 소용없는 것 아닌가요?”
예전에 어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면서 설명회를 하는 자리에서, 어떤 팀장이 이런 말을 했다. “제발 윗분들(임원)부터 먼저 좀 지키라고 해주세요"
팀원은 팀장을 탓하고, 팀장은 임원을 탓하고, 임원은 대표이사를 탓하고, 대표이사는 변하지 않는 직원들을 탓한다. 모두가 남 탓을 하는 이 뫼비우스의 띠 같은 순환을 끊어내는 유일한 칼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그리고 우리다.
‘나 자신’이 내가 만들고 싶은 바로 ‘그 문화’가 되는 것. 그것만이 실무자가 조직문화를 만들거나 바꿀 수 있는 유일하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그 스탠딩 책상을 사용하는 팀원에게는 그 부문장님의 양보와 배려가 회사의 조직문화인 것처럼.
오늘 이 순간, 내 바로 옆 동료가 경험하는 ‘내가’ 곧 회사의 조직문화다.
인살롱 in 인살롱 ・ 2020.11.29 ‘좋은’ 피드백이 조직에 해로운 이유
스타트업의 채용인터뷰에 단골로 곁들여지는 질문이 있다. 바로 “피드백”에 대한 질문이다.
‘길동님은 이전 직장에서 주변 팀원들에게 주로 어떤 피드백을 받았었나요?’
‘주변 동료분들은 둘리님을 어떤 사람으로 생각할까요?’
‘희동님은 리더에게 피드백을 받았을 때 어떻게 대응했었나요?’
물론 세부적인 내용과 판단 기준은 해당 사람,
직군, 회사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협업’과 ‘성장’이 중요한 키워드인 환경에서 지원자가 양질의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지 여부를 비중있게 다루는 것은 대부분 비슷하다. 채용인터뷰 이외에도 대다수 회사의 인사팀, 조직문화팀 혹은 피플 & 컬처팀으로 불리는 곳에서는 바람직한 협업문화, 건강한 피드백 문화(시스템)를 만들고 발전시키기 위해 힘쓴다. 피드백에 대해 다룬 다양한 책, 기고문, 기사, 사례, 이론들도 넘쳐난다. 개인과 조직이 성과를 내고 성공하기 위해서 피드백이 그만큼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투명하라!
진실을 담대하게 마주하라!
모든 종류의 피드백이 거침없이 오갈 수 있어야 한다!
유명한 조직들의 성공방정식으로 여겨지는 명료한 방법론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미 머리로는 알고 있는 내용들, 어디선가 마주치는 누군가에게 ‘나도 안다’라고 할 수 있는 내용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그것을 정말 이해했는지, 체계적으로 안착시키고 성과와 목표달성에 이르는 문화를 안착시켰는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좋은 피드백이란 무엇일까? 좋은 피드백이란 정말 존재할까?
지금까지 고민해 온 결과에 따르면, ‘심리적 안전감과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진실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바람직한 피드백인 것 같다. 그런데 ‘진실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감정과 감성이 앞서는 인간으로서는 담담하게 받아들이기 힘든 행위다. 누군가 나에게 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결국 쓴소리이지 않은가? 쓴소리를 들을 때면 심장은 벌렁벌렁, 호흡은 가빨라지고 겨드랑이에서는 땀이 주르륵 흐르기 시작하며, 콧잔등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만큼 얼굴이 화끈거리고, 어떤 때는 억울한 마음까지 생겨나 닭똥 같은 눈물이 막 맺혀버릴 것만 같다.
우리가 피드백을 받아들이며 감정의 늪에 빠질 때, 진실을 거부하고 싶을 때 나타나는 현상 중 일부다. 사람에 따라서는 진실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길고도 멀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관계가 틀어지거나 어색해져 어떠한 진실도 소용없어질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타인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보통의 사람은 누구나 사회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한다. ‘좋은 게 좋은 거지’ 괜히 쓴소리, 솔직하게 피드백 했다가 돌아올 피해가 두렵고 내 커리어에 나쁜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아 한다. 그리고 타인이 자신을 좋게 봐주길 원하며 관계가 틀어지거나 멀어지는 것에 대해 근본적으로 두려워한다. 그러다보니 타인의 부족함이나 미흡함에 대해 말을 꺼리게 되는 동시에 스스로 부족하거나 잘 모르는 부분도 숨기려 하게 된다. 스스로 진실을 말 할 용기가 없어지면서 진실을 들을 수 있는 기회마저 사라진다.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배울 수조차 없어진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좋지”라는 생각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 이렇게 이어지는 마음의 작용들은 결국 진실을 가로막는 요인, 건강한 피드백을 막는 요인이 된다. 개인과 조직의 성장과 성공은 조금씩 멀어져간다. 업계에서 흔히 정의하고 기피하는 관계중심 혹은 관계지향의 문화가 형성된다. 피플&컬처팀은 이 매커니즘을 이해하고 장애물들을 차근차근 없애주는 역할을 맡는 팀인 거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서부터 개인과 조직차원에서 다양한 방법론을 탐구하고 적용해보는 거다. 그런데 나는 방법론을 논하기에 앞서 관점의 전환을 이야기하고 싶다. 일상적인 대화와 생각에서 감정적인 영역을 최대한 이성의 영역으로 전환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좋고 나쁨(호불호), 옳고 그름(시시비비), 선하고 악함(선악) 등은 주관적이며 관념적인 동시에 감정적인 차원의 기준이다.
“그 아이디어는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앞으로 이 데이터까지 챙겨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 부분은 좋았는데요, 나머지는 조금 별로인 것 같아요.”
이런 종류의 생각과 대화들을 일정한 원칙과 기준에 근거한 관점, 적합과 부적합 혹은 건강과 안 건강함 등의 말로 전환해보는 것이다!
“그 아이디어는 고객들이 기존보다 더 빠르고 간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서 우리의 목표달성에 적합하네요.”
“앞으로 이 데이터까지 챙겨주시면 제품기획에 더 빠르게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부분은 애초의 기획의도를 충족했어요. 정말 추진력 갑이네요, 그런데 나머지는 처음 합의했던 내용과 다른데 이유가 있었을까요?”
건강한 피드백, 적합한 피드백은 잘한 일에 대한 칭찬과 격려, 부족하거나 미흡한 부분에 대한 적확한 지적으로 구성된다. 애당초 합의하거나 설정했던 기준/원칙 혹은 기대치와 비교해볼 때 자신이 얼마나 잘 했는지 혹은 부족했는지, 무엇이 강점이었고 약점이었는지, 무엇을 더 보태거나 제거해야 하는지 등의 진실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개인과 조직이 변화하고 혁신하는 속도를 높이고, 궁극적으로 성과를 달성하고 성공할 수 있도록 하는데 핵심적인 관점이다.
개인과 조직이 마주해야 할 진실을 가로막는 감정과 장애물의 패러다임을 이해하고 차근차근 제거하면, 모르는 부분과 약점, 실수 혹은 실패마저도 스스로 솔직하게 공개할 수 있는 담대함을 갖게 된다.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이성의 영역에서 온전한 피드백이 가능해진다.(여기서 피드백과 성과평가/보상을 연결할 것인지의 여부는 또 다른 주제다.)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과 도움, 역량을 빌릴 수 있게 된다. 내가 언제라도 틀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향한 진실을 추구할 수 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고 로봇도 버그가 생겨 오판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완벽한 인간은 없고, 완벽한 인사도 없다. 몇 날을 고민하고 토론하고 갑론을박하고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겪어도 이야기 거리가 넘쳐나는 주제인 .피드백., 망망대해에 놓인 채 답을 얻지 못하는 때가 대부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건강하고 발전적인 피드백을 향한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겠다. 개인과 조직이 변혁의 속도를 높이고 끝내 함께 성공하도록 나아가는 그 여정에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함께 해주시면 참 “좋겠다!”
인살롱 in 인살롱 ・ 2020.11.30 숫자는 소통을 위해 거들 뿐 (Feat.조직문화 진단을 바라보다)
어느 마을에 사이 좋은 형제가 살고 있었어요. 그 형제에게는 누구에게도 없는 보물이 하나씩 있었지요. 첫째에게는 어디든지 원하는 곳을 다 볼 수 있는 망원경이 있었고, 둘째에게는 어디든지 원하는 곳을 갈 수 있는 양탄자가 있었으며, 막내에게는 먹으면 어떤 병이든 낫게 해주는 사과가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날, 첫째가 동생들에게 말했어요. "동생들아 내가 망원경으로 보니 저쪽 먼 나라 공주님께서 불치병에 걸려서 명의를 찾고 있다는구나. 그래서 누구라도 공주를 낫게 해주는 사람을 공주와 결혼을 시켜주고 큰 돈을 준대. 아파서 저렇게 고생하고 있는 공주님을 위해 우리가 가야 하지 않겠니?" 그랬더니 동생들은 흔쾌히 응하였고, 둘째는 바로 양탄자를 준비했어요. 그리고 그 나라에 도착한 형제는 막내가 가지고 있던 사과를 공주에게 먹여서 공주님을 낫게 해주었지요.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어요.
첫째는 내가 먼저 공주가 그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는 걸 발견했으니 내 공이 가장 크다고 했고, 둘째는 내 양탄자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이렇게 먼 나라까지 올 수 있었느냐고 했고, 막내는 내 사과가 아니었으면 공주가 낫지 못 했을 거라고 했지요.
우리 사회에서 ‘헌신’에 대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인용하고 있는 천일야화 속 이야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이야기의 결말은 자기가 가진 것이 없어질 것을 알고도 공주를 위해 기꺼이 사과를 내어준 막내와 공주님이 결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준 후 결말은 들려주지 않고 이런 질문을 던져봤다."얘들아, 이들 중 누가 공주님과 결혼을 해야할까?"그러자 6세 아이가 이런 대답을 한다.**“결혼은 서로 행복
하기 위해서 하는 건데, 왜 공주님의 의견은 안 물어봐요?"**순간 멍해진다. 이게 우문현답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필자는 현업에서 10여년간 조직 내 소통 업무를 담당해왔다. 그것을 위해 워크숍, 캠페인, 행사, 진단, 교육 등 많은 업무를 경험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 하나. 소통이란 사전적인 의미로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 이지만 조직에서 행하는 소통에는 ‘서로’가 빠져있다는 것. 우리네 조직에서는 직원들에게 ‘상호 성장’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아니 달콤한 열매 이미지를 내보인다. 그리고 ‘함께’ 잘 해보자고 말한다. 그런데 서로 성장하자고 하면서 구성원들의 마음이나 인식은 어느 정도나 귀하게 여기고 있을까? 요즘은 그나마 많은 회사에서 구성원들의 마음과 인식을 알고자 조직문화 진단이라는 수단을 택한다. 아주대학교 김경일 교수의 강연 중 이런 말이 있었다. “19세기 들어오면서 자연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자연 과학이 발전했다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현상을 숫자라는 단일 표기체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거죠. 그러던 중 철학자 중 일부가 ‘사람의 마음도 숫자로 표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합니다.” 조직문화 진단은 직원들의 마음과 인식을 숫자라는 단일 표기체로 표현한 데이터를 얻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정말로 신뢰할 수 있는 결과일까? 내가 생각하는 5점의 강도와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5점 정도의 강도가 같지 않은데 표기하는 수단만 같은 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결국 숫자는 편의를 위해 취하는 수단일 뿐 그것 자체가 의미가 되기는 어렵다. 응급실에서도 환자가 느끼는 통증이 1~10중 어느 정도에 해당하는지 묻고 난 후 정밀 검사를 또 하지 않던가? 진정으로 마음을 알고자 한다면, 목소리를 듣고 싶다면 숫자라는 표기체를 기반으로 알아가기 위한 활동이 필요할 것이다. 요즘 비대면이라는 새로운 업무 환경을 맞이하여
‘
소통
’
이라는 단어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
이에 필자는 조직에서 행하는 소통에
‘
서로
’
라는 단어를 호출하여 구성원들의 마음과 인식을 알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볼 때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지 않던가.
인살롱 in 인살롱 ・ 2020.12.01 디지털 워크플레이스는 어떻게(2)
얼마 전 JTBC <방구석 1열>에서 <두 교황>이라는 영화를 소개해줬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그 뒤를 이은 교황 프란치스코의 실화를 바탕으로 배우들의 호연이 인상적인 영화이다. 영화는 가톨릭의 보수적 가치를 강경하게 지켜 온 베네딕토 16세와 개혁과 관용을 지지하는 당시 베르골리오 추기경 사이의 논쟁, 존중, 포용을 다룬다. 마침 내가 TV를 켰을 때 이런 대화 장면이 나왔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신은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다 라고 한다. 프란치스코 추기경은 신은 변하며 이동한다고 한다. 신이 항상 이동한다면 우리가 신을 어디서 찾을 수 있냐는 베네딕토 교황의 반문하였다.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대답한다.
“ On the journey?”
디지털 혁신 업무를 하다 보면 답답한 점이 정확한 도착지를 알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경제도 변하고, 환경도 변하고, 비즈니스도 변하고, 경쟁자도 변하고, 구성원도 변하고, 기술도 변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우수한 사람도 모든 변수를 다 고려한 단 하나의 최적점을 찾기는 어렵다. 적어도 나는 그럴 만한 혜안은 없었다. 내가 1년 동안 지도를 펼쳐놓고 점을 찍었다 지웠다를 반복하면서 내린 결론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여정이고, 그 정답은 말 그대로 On the journey에 있다. 소수의 기획자가 책상에 앉아서 열심히 보고서를 쓰면서 좌표를 찍는 것보다 일단은 혁신의 여정에 많은 구성원이 함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가까워 질 것이라는 계시를 얻은 것이다. 아멘.
<이처럼 많은 구성원이 여정을 함께 할 수 있을까?>
구성원의 동참이 없는 디지털 혁신의 여정은 금세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성공을 위해서는 새로운 과업 방식에 기꺼이 적응할 의지가 있으며, 기술을 계속해서 수용해서 스킬 업해나갈 구성원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걸 디지털 민첩성( **Digital dexterity)**이라고 부른다. 구성원이 디지털 민첩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디지털 워크플레이스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는 디지털 워크플레이스가 필요하다.
코로나 19 이후에 마치 디지털 워크플레이스가 유행어처럼 쓰이고 있지만 디지털 워크플레이스는 디지털 혁신을 위한 중요한 비즈니스 전략이다. 우리는 의심할 여지없이 빠르게 변화하는 비즈니스 환경에 놓여 있다. 회사는 직원들이 이러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정말로 돕고 있는가? 아니면 오히려 그들을 방해하고 있는가? 직원들이 회사에서 사용하고 있는 디지털 서비스의 수준이 개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수준에 못 미치는 현실에서 직원들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어떻게 생각할까?
실제로 작년 12월 1000여 명의 직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당사의 디지털 업무환경 수준을 낮게 평가할수록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냉소적인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디지털 워크플레이스는 직원 개인이 디지털을 마음껏 활용하여 최적의 생산성을 낼 수 있는 환경을 추구한다. 디지털 워크플레이스는 단순히 RPA가 많아지고, 협업툴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나의 작업 행동을 드러내는 일련의 데이터와 그것들이 실행되는 맥락을 지능적으로 추적하고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직무, 우리 팀의 성과, 나의 관심사, 나의 업무 스타일, 현재 생산성, 전문성 보유 수준, 웰빙과 같은 정신적 건강까지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들이 애플리케이션에서 데이터로 활용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AI 기반 소프트웨어 로봇이 수신 이메일을 분석하여 "노이즈"를 걸러 내고 가장 중요한 내용을 식별해야 한다. 내가 가진 도메인 지식이 자연스럽게 알고리즘으로 공유된다. 회의 대상 참석자를 위한 일정을 생성하고 보고서를 만드는 작업 역시 나의 행동을 기반으로 최적화하여 대신할 수 있다. 이러한 아키텍처는 나의 행동, 선호도 및 생산성에 대해 점점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하여 이를 강화하여 점점 더 효과적이 된다. 물론, 현재 이것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곳은 거의 없다. 그러나 디지털 워크플레이스의 방향은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럼 디지털 워크플레이스는 어느 부분을 고려해야 할까? 먼저 사용자가 요구하는 디지털 워크플레이스의 인프라와 운영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예를 들어 모바일과 PC와 같은 장비는 어떻게 쓸 것인지, 가상 데스크톱(VDI)이나 서버 기반 컴퓨팅(SBC)은 어떤 방식으로 구현할지를 정해야 한다. 한마디로 우리 회사에 적합한 엔드 포인트 컴퓨팅 방식을 설계하는 것이다. Workday와 같은HCM(Human Capital Management ) 솔루션 역시 디지털 워크플레이스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HCM은인력 관리, 급여, 인재 확보, 인재 관리, HR 서비스 관리, 분석과 같은 엔터프라이즈 HR 프로세스를 지원한다. 회사차원에서는 변화하는 조직 요구 사항에 대응하는 구성원의 민첩성을 개발하고 유지하는 차원에서 중요하며, 직원들에게도 본인을 둘러싼 정보를 시각화해서 제공할 수 있다. AI와 분석기술, BI솔루션의 발달도 중요한 축이다. 비즈니스를 위해 더 나은 의사 결정을 지원하는 것은 디지털 워크플레이스가 중요한 비즈니스 전략임을 다시 한번 증명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전문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와 시티즌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를 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난 글에서 설명한 협업툴과 같이 클라우드 기반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직원들이 중단 없는콘텐츠 생산, 협업 및 커뮤니케이션을 경험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어야 한다.
<현업의 시티즌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와 전문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의 협업>
그동안 익숙한 업무환경을 디지털 혁신하고 디지털 워크플레이스로 만드는 것은 강력한 의지가(Ambition) 필요하다. 혹시나 유행처럼 우리 회사도 디지털 워크플레이스 해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당신의 회사는 정말 변화의 의지를 가지고 있고, 필요한 기술, 도구 및 교육에 어떻게 투자할 의향과 능력이 있는지 잘 살펴보기를 바란다. 디지털 워크플레이스는 비즈니스 성과를 뒷받침하는 전략이며 직원경험을 증진시켜주는 도구이다. HR에서 디지털 워크플레이스 구축을 간과하고, 구성원에게 애자일을 얘기하고 디지털 리터러시를 말하고, 디지털 전환을 설파하는 것이 효과가 있을까? 모세가 홍해도 가르지 않고 돌판에 십계명도 보여주지 않았으면 누가 가나안 땅으로 따라나섰을까? 직원들에게 당장 눈앞의 환경에 디지털 심어주지 못하면서 미래와 변화를 약속하기는 어렵다.
(두 교황 이야기로 시작하다 보니, 종교적인 비유를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혹시나 불편하셨다면, 넓은 마음으로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인살롱 in 인살롱 ・ 2020.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