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생활 짬밥 13년째, 이제 웬만한 기안서나 보고서 작성은 식은 죽 먹기가 되었다. 그렇다고 잘 쓴다는 것이 아니라, 개조식 글이 대부분인 사내문서의 작성 실력이 근속 기간만큼이나 재야의 고수급이 되었단 얘기다. 근속만큼 쌓여있는 비기와 필살기도 상당하다. 일반적으로 ‘소통’이라 함은 사람(구성원)과의 대화나 활동, 관계에서 많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조직에서 대화나 활동, 관계만큼 중요한 것이 ‘글로 나누는 소통’이다. 직장생활 중 문서(기안서, 보고서, 메일, 공지 등) 작성이 일의 50% 정도는 되니 쉽게 간과할 수 없는 소통의 영역인 셈이다. 특히나 HRer에겐 글 소통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 글 소통의 질에 따라 조직, 혹은 일을 대하는 구성원의 사고와 행동에 많은 영향이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그런데, 조직 내 ‘소통’에 대한 활동, 워크숍, 교육은 상당히 많음에도 '글 소통'에 대한 교육은 온라인 강의 하나가 전부이거나 나머진 깨지고 깨지는 경험으로 터득하는 게 다반사다. 자사의 주니어에게 진행하는 이러닝 중, .1페이지로 승부하라., .단번에 사로잡는 보고 방법.의 과정이 있는데 보통 주니어는 보고를 하기 위한 '첨부문서' 작성이 더 많아 1페이지 보고는 필요하지 않음에도, 필수과정이 되기도 한다.필자도 과정을 수강했지만 필요하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최선은 아니었고 막상 실무를 하려니 배웠던 강의 지식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조직에 따라 문서 작성이 일종의 암묵적 문화(상사 스타일에 따라 다른)인 형태도 많고 문서 외에도 공지나 메일은 보이지 않는 행간도 있으니, 사내에서 문서작성의 실제적인 교육 방법에 대해 고민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글의 소통이 중요한 이유는, 업무에 있어 상당한 효율도 가져다 주지만 글을 통해 일의 목적을 더 잘 달성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쓰는 사람도, 글을 쓰라고 지시하는 사람도 명확하게 소통해야 목적이 달성될 수 있는 글이 나온다. 예를 들어 나의 상사가 “OO주임, 건강검진 공지할 때 되지 않았어? 어서 올려” 와 “OO주임,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건강검진이 좀 어려울 수 있을 텐데, 어떻게 하면 직원들이 안전하게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공지를 올려야 할거 같아”는 일을 하는 사람의 결과를 다르게 만든다.위 후자의 업무 지시 방식은 실무자가 일을 함에 있어 더 많은 상황을 고민하게 되고 고민의 결과가 글로 소통이 되며, 구성원들은 그 글을 통해 스스로 행동을 결정한다. 만약 전자의 지시 방식으로 일을 하고 ‘공지를 올렸다’, ‘메일을 보냈다’, ‘안내를 했다’ 의 행위로만 일을 하게 되면 글 소통은 물론 그 일의 목적은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필자가 경력 성숙기에 접어드니, 예전엔 그냥 넘긴 사소하지만 중요할 수 있는 것에 도전이 생긴다. 가령, 거창하거나 특별하진 않지만 사내 Best/Worst Practice를 찾아 자료를 만드는 등의 작은 스텝의 넛지를 시도하는 것들이다. 문서작성 교육이 실무에 그닥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경험을 통해 후배들에게 불필요한 소모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교육 용어 중 ‘어포던스(affordance)’라는 단어가 있는데 어떤 행동을 유도한다는 뜻으로, 행동유도성이라고 한다. 우리의 업무 대부분이 행동유도성을 가지고 있고, 그 행동을 유발할 수 있는 동기를 주거나 혹은 자극하는 것이 우리 일의 전부가 아닐까? 그렇기에, 조직에서 대면 소통만큼이나 글의 소통에도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미래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우리회사에서 탄생할지는, 모를 일이다. @필자는 HRD를 기반으로 인사업무 전반을 담당하고 있고, 업무의 과정 중 '교육, 소통, 경력개발'에 대한 경험을 기록하고 싶어졌다.<전체 이미지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