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낯설게 캐묻기 . 1. 프로님 , 안녕하신가요 ? 종종 익숙해진 단어 하나를 낯설게 보고 스스로 캐묻는 것을 즐기는데 내가 요즘 캐묻고 있는 단어는 Professional, 즉 ‘프로’다. 사전적 정의로는 어떤 일을 전문으로 하거나 그런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 HR 파트를 전문으로 담당하며 급여를 받으면서 전문 직업인으로 일하고 있으므로 사전적 의미로는 나 역시 프로에 속한다. 그럼 과연 실질적 의미에서도 프로일까? 프로의 기준이 무엇인지 고민해 본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영역에서 전문성을 갖춘 것?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 전문성은 늘 노력해야 하는 타협할 수 없는 전제이고(이어지는 글에도 전문성은 당연한 전제로 두고 가도록 한다), 결과물 역시 중요하겠지만 프로라고 해서 매번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우리 모두가 열린 조직문화 속에서 충분한 자원을 가지고 합리적인 리더와 유능한 선배, 센스 있는 후배와 함께하는 이상적인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것은 아닐 테니까. 그렇다면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 나는 ‘최선’을 그 기준점으로 삼는다. 최선만큼은 외부 요인의 핑계를 댈 수 없는, 내가 오롯이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고 좋은 결과물이 나오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얘기다. 만약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데도 결과물이 좋았다면? 그건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엄청난 능력자이거나 아니면 누군가의 최선에 무임승차한 것이거나. 내가 알고 있는 경우에 한하여 보자면, 전자보다는 후자이면서 전자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최선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외부 환경을 무시할 수는 없다. 최선을 다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것은 분명 존재한다. 그렇다면 매우 다양한 외부 요인들의 강력한 방해를 받는 환경에서의 최선은 무엇일까. 1)그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2)더 좋은 환경으로의 도약을 위해 쓰디쓴 경험을 핥으며 본인의 역량을 키우는 것. 탓하고만 앉아 있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으니까. 좀 팍팍한가? 사축처럼 ‘노오력’을 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내 인생은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으니 주체적으로 살자는 의미에 가깝다. 다만 개인적으로 ‘적당히’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적당히는 ‘지속 가능한 수준에서의 최선’이다. 오버페이스 후 나가떨어지는 것은 최선이 아니다.이제 ‘프로’와 ‘최선’의 개념을 업무의 영역으로 끌어들여보자. 만약 전사적으로 시행하려는 제도에 대해 충분히 합리적으로 기획하고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성원들의 반대가 많다면? 그간 주관부서와 구성원과의 충분한 신뢰가 쌓였는지 먼저 살펴본다. 직원이 행복해야 회사가 성장한다는 대의를 내세우고는 설득이 어렵다는 이유로 Top-Down 방식의 제도 전파를 고수하고 있지는 않는지.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제도를 성급하게 도입하고 수정을 반복하거나 기존 제도로 회귀해서 구성원의 혼란을 가중시킨 경험은 없는지. 그런 적이 있었을 수도 있고, 나의 뜻과 의지가 아니었을 수도 있으며, 나 하나 목소리 낸다고 해서 바꿀 수 없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팍팍하게 보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바꿔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프로다. 옳다고 생각하는 길이 당장 가기 어려운 길이라면 한명, 한명을 진심으로 대하고 설득해서 조력자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차후 시행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두는 중장기적 관점에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한발 더 나아가자면 전문적으로 보일 수 있게끔 하는 것 역시 프로의 영역이다. HR의 업무는 필연적으로 구성원 다수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업무 전문성을 가지고 충분히 고민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필요할 때는 대외적으로 보여지는 모습까지 프로 같을 수 있어야 ‘찐프로’다. 만약 보여지는 모습이 전혀 전문적이지 못하다면 직원들은 그 담당자가 진행한 결과물(업무)에 대한 신뢰성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할 것이고,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 부분에서 불필요하게 많은 저항에 부딪히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물론 우리는 AI가 아니니까 늘 완벽할 수 없으며, 항상 최선을 다하기도 어렵다. 심지어 AI도 오류투성이인데. 물론 나는 말할 것도 없고. 나에게 완벽을 요구하는 이가 있다면 그 역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완벽할 수 없어도 그런 자세를 견지하려는 노력은 기울이고 있다고, 가끔 틀릴 때가 있어도 옳은 길로 돌아오려는 노력은 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 자기반성 자체가 바로 ‘프로다움’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우린 마냥 자리에서 최선만 다해야 하는 걸까. 이렇게나 팍팍하고 가혹하게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조직문화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우아한 형제들의 <송파구에서 일 잘하는 방법 11가지>는 접해 봤을만하다.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 업무상 모토로 삼고 있는 내용이 있는데, 바로 몽촌토성역 편의 11번 '이끌거나, 따르거나, 떠나거나!'이다. 옳다고 생각하거나 이미 결정된 사안이라면 따른다,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면 주체적으로 이끈다, 목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만 있다가 일이 엎어지고 나서, ‘거봐, 내 저렇게 될 줄 알았어.’라고 하는 것은 비겁한 걸 떠나서 우선 너무 폼이 나지 않는다. 만약 내가 충분히 의사를 개진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결과도 좋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반복된다면? 그건 떠날 때가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조직에서 다시 열정적으로 부딪쳐보면서 내가 옳았음을 입증하거나, 내가 부족했던 부분을 깨닫는 계기가 되거나. 고이지 않고 나아가기 위한 도전이 필요할 때가 된 것이 아닐까.유능한 의사가 최선을 다해 수술을 집도한다고 해도 그 결과가 늘 좋을 수만은 없다. 그럼에도 그때마다 매번 집도의의 멱살을 잡으며 책임을 묻는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는 이유는 ‘최선을 다했습니다.’라는 프로의 말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프로’가 행한 ‘최선’의 무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