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은 보고서를 대부분 엑셀로 만들었습니다. 실무자와 관리자가 데이터를 보면서 함께 고민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엑셀이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몇 년후 사내 프로젝트가 활성화되면서 파워포인트로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실무에 능한 사람들이 프로젝트 리더로 선정되었는데, 다들 PPT를 배우느라 한바탕 홍역을 치렀죠. 그런데 어떤 리더는 엑셀로 파워포인트와 거의 흡사한 문서를 만들어내더군요. PPT 사용법을 배우는 것보다 엑셀로 PPT를 흉내내는 것이 더 쉬웠나 봅니다. 사회 생활을 시작한 후로 1997년 IMF 사태, 2009년 금융위기, 2020년 코 로나 팬데믹을 겪었습니다. 대략 10년 주기로 큰 변화가 발생했는데, 코로나 팬데믹은 앞의 두가지와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바로, 시작과 끝을 알 수 있다는 점이죠.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생활과 업무의 주 공간이 바뀌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가속화되면서 어떤 이들은 미래가 앞당겨졌다고도 합니다. 오프라인이 익숙한 기성 세대는 그러한 변화가 이질적이고 어려웠지만, 디지털 네이티브인 MZ 세대는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덜했습니다. 디지털 혁신과 온라인 환경에서는 젊은 세대가 기성 세대를 돕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리더들이 겪는 어려움은 삼중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즈니스가 바뀌고, 업무 환경이 바뀌고, 함께 일하는 직원들의 세대도 바뀌고 있습니다. 과거의 노하우에 의존하는 리더들은 갑작스런 변화에 허둥댔고, 학습 민첩성이 뛰어난 리더들은 새로운 탐색과 실험으로 변화에 적응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조직의 구성원들은 누가 변화를 이끄는 주역인지, 누가 변화를 가로막는 주범인지 지난 1년여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부러 악역을 맡고 싶은 리더가 있을까요? 변화를 리딩하려는 의욕은 높지만 오랫동안 몸에 배인 사고습관과 행동습관을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테죠. 더구나 변화의 과정은 U자형 커브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변화에 적응할 때 이전보다 생산성이 낮아지고 성과도 미흡한 상태를 겪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과거로 회귀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변화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오랜 기간 지속되어야 변화는 새로운 습관이 되고, 지금보다 더 나은 결과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코로나 백신 덕분에 코로나 이후를 대비하는 움직임이 요즘 활발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종식되면, 리더들은 앞당겨진 미래에 계속 적응하거나 아니면 코로나 이전의 방식으로 돌아갈 것인지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리더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리더의 선택을 돕기 위해서 인사나 교육 실무자들은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까요?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코로나 팬데믹에서 리더와 직원들이 겪은 경험을 함께 돌아보는 것입니다. . 리더와 직원들은 변화에 어떻게 대응했는가? . 변화에 대한 적응을 촉진한 것과 방해한 것은 무엇인가? .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무엇인가? . 학습 민첩성과 회복 탄력성은 어떠했는가? . 유지할 것, 버려야 할 것, 새롭게 익힐 것은 무엇인가? 리더십 개발, 직원 역량 개발, 그리고 조직력 개발은 따로 따로가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리더십은 직원의 성장을 도와서 조직의 성과를 달성하는 것이고, 조직력은 리더와 직원이 서로 합심해서 만들어내는 합작품이니까요. 코로나 상황에서 리더와 직원들이 각자의 경험, 그리고 우리의 경험을 신중하게 들여다보고, 그 경험이 학습 기회가 될 수 있도록 한다면, 코로나 이후를 대비하는 적응력이 그만큼 더 강해질 것입니다. 피터 드러커는 리더나 조직이 과거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려면 정기적으로 '계획된 폐기(planned abandonment)'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리셋 버튼을 누른 것처럼, 누구나 폐기학습(unlearning)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리더들이 코로나로 작년과 올해 겪은 경험을 폐기와 학습의 기회로 삼아 과거의 굴레를 벗어난다면, 그리고 인사나 교육 실무자들이 리더의 변화를 돕는 기회가 많아진다면, 코로나는 비록 진통은 컸지만 우리에게 값진 경험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