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행위 - 생각의 산파, 그 너머에 있는 걷기
남자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스승이 위독하다는 소식이었다. 최소한의 짐을 챙겨 길을 나섰다. 뮌헨을 떠나 스승이 입원한 파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22일 만에 파리에 도착한 남자는 무사히 스승을 만났다. 무모한 행동치고는 다행스러운 결말이었다. 남자의 이름은 베르너 헤어초크! 괴짜로 알려진 독일의 예술 영화 거장이다.
과연 괴짜다. 위독하다는데, 왜 걸어갔을까? 반갑게도 기록을 남겨주었다.
“1974년 11월 말, 파리에 있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로테 아이스너가 병세가 위중하여 곧 죽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럴 수 없다, 지금은 안 된다, 이 시점에 독일 영화계가 그녀를 잃을 수는 없으며 우리는 그 죽음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 라고 나는 말했다. 재킷과 나침반, 그 외의 필요한 물품을 더플백에 챙겼다. 장화는 새것이고 튼튼해서 충분히 믿을 만했다. 걸어서 가면 그녀가 살아 있을 거라는 확신을 품고 나는 파리로 향하는 최단 거리의 도로를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온전히 혼자이기를 원했다.” - 베르너 헤어초크, 『얼음 속을 걷다』의 서문 중
말하자면 걷기는 간절한 자기 암시였다. 스승의 생존을 비는 기도였다고 해도 무방하리라. 나는 이 숭고한 감정에 고개 숙인 존경을 보낸다. 동시에 그의 의도가 삐딱하게 보이기도 했다. 그의 선택은 독단의 발로가 아닐까? 혹은 철없는 자기기만이거나? (『얼음 속을 걷다』는 22일간의 도보 에피소드로부터 4년이 지난 후에 쓴 글이다.) 예단은 금물이다. 나야말로 경지에 오른 정신세계를 독단적으로 해석할지도 모르니까.
지금의 내 수준에선 이해하지 못할 어떤 위대한 예술가의 정신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중이다. 그의 결단과 걸음에서 느낀 숭고함이 한 독서 기억을 불러냈다. 곰팡이 핀 사과를 버리려다가 그대로 두었다는 이우환 선생의 일화다. 두 달여 여행을 다녀왔더니 방에서 썩은 사과가 달짝새콤한 냄새를 풍기더라는 것이다. 가족도 함부로 선생의 방을 드나들 수가 없었다는 말에서 전후 사정이 이해되었다. 정작 이해할 듯 말 듯한 얘기는 다음에 이어졌다.
“나는 서둘러 창문을 열고 공기를 바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썩은 사과를 버리려고 쓰레기통을 찾고 있는 사이에 갑자기 마음이 변했다. 색깔 하며 모양 하며 그리고 냄새 하며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묘한 정물······. 평범한 감상용 과일에 비해 그야말로 진기한 오브제. 나와 자연과 시간이 함께 만들어낸 귀중한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을까. 곰팡이 핀 접시를 책상에서 사방탁자 위에다 옮겨놓자 한층 의미 있는 듯하고 아까운 생각이 들어 조용히 창을 닫고 커튼을 친다.” <곰팡이 핀 사과>, 『시간의 여울』에 수록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 말로 표현하긴 힘들다. 곰팡이 핀 사과를 버리지 않은 이유보다 이우환 선생의 위작 문제를 설명하는 쪽이 쉬워 보였다. 이성적인 설명이 힘들 뿐, 헤어초크도 이우환 선생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난생처음로 곰팡이에게서 신성한 기운을 느낀 것이다. 요즘엔 걷기에서도 영험한 기운을 느끼는 중이다. 이런 생각을 하던 터에 『두 발의 고독』이라는 책에서 걷기에 대한 헤어초크의 신념을 만났다. 우연한 행운이었다.
“세상은 걸어서 여행할 때 황홀한 열린 공간이 된다.” - 베르너 헤어초크
예사로이 넘길 수가 없는 문장이었다. 아니, 읽자마자 마음에 콕 박혔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저자가 독일의 괴짜 감독을 불러낸 이유는 걷는 ‘속도’를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천천히 걷는 사람은 많은 것을 보지만, 빨리 걷는 사람은 주변을 잘 보지 못한다. 최대한 빨리 달리는 사람은 자기 몸에 관심을 집중한다. 느리게 걷는 사람은 자기와 멀리 떨어진 사물들, 세상과 바깥에 있는 모든 것을 향해 주목한다.”(p.240)
누구나 경험할 법한 얘기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속도의 중요성을 배웠던 터전은 양평 자전거길이었다. 자동차로 숱하게 오갔던 길인데, 자전거를 타고 갔더니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바뀌었다. 숲이 있었고 강이 흘렀다. 이전에도 보긴 했지만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순식간에 스쳐 갔던 풍광들이 바람으로 소리로 얼굴에 새겨졌다. 한번은 자전거 대신 두 발로 걸었더니 또 다른 세상을 만났다.
걸을 때마다 자연의 표정이 달랐다. 시절에 따라 향이 바뀌었고, 산새들의 지저귐이 가득했다. 계절마다 고유한 꽃이 피어났다. 걸어야 비로소 만나는 존재들이었다. 과연, 걸으면서 만나는 공간은 달랐다. 길마다 서로 다른 풍광을 경험했다. 살과 오감으로 생생하게! 때론 더웠고 때론 시원했다. 마음의 표정은 달랐지만 대부분 행복했다. 때론 경쾌하게, 때로는 고용하게! 이 모든 경험을 아우르면 ‘황홀’에 이르는 거겠지.
공교롭게도 뒤이어 읽은 책에서도 속도 얘기가 등장했다. 도시학자 리처드 세넷 또한 자신의 저서에서 인간의 이동 속도에 주목했다. “빠른 이동 속도는 자신과 타인의 살(flesh)에 대한 감각을 둔화시키고, 세상을 최면 상태로 경험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동하는 일에만 함몰되어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향유할 줄 모르는 “운전자는 공간을 뚫고 지나가고 싶어할 뿐 공간에서 자극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세넷의 문장을 읽다가 섬뜩해졌다. ‘최면 상태에서의 경험’이 무엇을 뜻하는지 감이 왔기 때문이다.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온갖 생각을 하느라 ‘어떻게 여기까지 운전해서 왔지’ 하고 놀랐던 적은 나만의 경험이 아니리라. 이것은 이중의 섬뜩함이다. 사고가 날지도 모를 가능성으로 인한 섬뜩함 그리고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무신경에서 오는 섬뜩함! 어떤 길은 정말 기억나는 게 없다. 놀랍다, 분명 내 육체와 자동차가 지나온 길인데···.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경험이라니! 이것을 ‘백지 경험’이라 부르면 어떨까. 총천연색 세상인데도 인식하지 못했고 그리하여 머릿속에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았다. 백지처럼 말이다. 소음의 분류를 염두에 둔 명명이다. 소음이 특정 음높이를 유지하는 '컬러 소음'과 넓은 음폭을 갖는 '백색 소음'으로 나뉘더라. 백색 소음이 일상생활에 방해되지 않듯이 백지 경험도 먹고 사는 일에는 누가 되지 않는다. 몰입과 같은 유익한 백지 경험도 있고.
문제는 속도의 과잉으로 인한 백지 경험이다. 삶의 질, 사람과의 관계, 세상을 이해하는 일에 은근히 악영향을 미칠 테니까 하는 말이다. 지난주의 일이다. 어느 목가구 전시장에서 ‘공간’의 가치를 깨우쳤다. 가구와 가구 사이에 자리한 ‘넓은 빈 공간’ 덕분에 예술과 사람 그리고 내면의 사색을 만났던 것이다. 그 공간을 향유했던 배경에는 ‘속도’의 영향도 컸다. 그날 90분을 머물렀는데, 그 빠르지 않은 속도의 공도 있었을 것이다. 5분 만에 빠져나왔다면 그날의 경험도 함께 증발했을 테니. 이른바, 백지 경험!
속도가 힘이요, 관건이다. 총을 보시라. 작은 쇠붙이에 강력한 속도를 덧입히면 살상 무기가 된다. 하산할 때 다리에 힘을 주면서 조심하거나 뛰어 내려오지 않는 까닭은 속도의 위력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어딘가로 여행할 때 여유로운 국도 대신 고속도로를 쌩쌩 달리는 걸까? 속도에 대한 무사유는 아닌지?! 빠른 속도의 위해성과 느린 속도의 가치를 깨치기 시작한다면 크고 작은 삶의 변화가 일어날 것만 같다.
내가 지금 속도의 저력을 지나치게 과신하는 걸까? 아니면 인간의 ‘느린’ 이동, 즉 걷기야말로 영험한 행위인데, 우리가 잘 모르고 사는 걸까?
어쩌면 우린 소요학파들의 생각에 갇힌지도 모른다. 그동안 걷기가 생각의 산파라고 생각해 왔는데, 걷기가 서운함을 느낄 법해서 하는 말이다. 생각의 산파 그 이상이다. 걷기는 곰팡이 핀 사과처럼 외면하기 힘든 삶의 요소다. 창조적 생각의 요람이자 불안과 무기력의 무덤이다. 자신과 세상을 위한 기도요, 공간을 총천연색으로 만나는 경험이다. 중요한 것은 이동하는 속도다. 마음의 속도와 걷는 속도가 산책을 산책답게 만든다.
어찌됐든 무모해 보였던 괴짜의 바람은 이뤄졌으니,
친구이자 제자를 만난 스승은 9년을 더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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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한 책들>
. 베르너 헤어초크, 안상원 옮김, 『얼음 속을 걷다』, 밤의책, 2021
. 토르비에른 에켈룬, 김병순 옮김, 『두 발의 고독』, 싱긋, 2021
. 리처드 세넷, 임동근 옮김, 『살과 돌』, 문학동네, 2021
인살롱 in 인살롱 ・ 2021.06.27 커리어 고민, 모여봐 들어봐 5 #내가 가진 역량이 시장에서 먹힐까요?
Q1. “ 내가 가진 역량이 시장에서 먹힐까요?”‘이직할 땐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당신이 가진 능력이 당신 생각 이상으로 뛰어난 것이라고’ 저도 그렇게 이직을 고민하는 지인과 후배들에게 조언을 합니다만, 막상 저 스스로에게는 그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겸손”을 미덕으로 생각해왔기 때문에 스스로의 몸을 낮추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요..
김나이 커리어 액셀러레이터 답변
어떤 포지션의 제안이 들어왔을 때 우리가 고민해야할 첫 번째 질문은, ‘내가 그럴 자격이 되는가’가 아니라 ‘**그** 자리가 나에게 괜찮은 **자리인가**’가 더 중요해요.‘그 자리가 나에게 괜찮은 자리인가’의 답을 찾아보기 위해서는 생각해야할 요소들이 많아요.
내가그일을하고싶은가?
내가거기에서얻고자하는경험이무엇인가?
내가얻고자하는그경험을얼마나얻을수있는가?
그들이나에게요구하는것이역할이무엇인가?
나는그역할을하고싶은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이 먼저이고, ‘자격’은 그 다음에 고민해야 하는 것이예요. 그리고 그 ‘자격’도 보통 자격에 대해 고민하지 않으셔도 되는 분들이 고민하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자격에 대해 고민을 하셔야 할 분들이 고민을 안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회사에서도 가진 능력이나 전문성은 없어도 사내에서 관계를 형성하고 말 잘해서 높은 직책을 얻고 오래 가는 분들이 많잖아요? 우리가 그것을 폄하만 할 것이 아니라, ‘**Communication** 능력 그리고 자기 스스로에 대한 sales **능력**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볼 필요도 있어요.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자격’이라는 것은 일단 그 회사, 그 포지션으로 간 후에 고민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OO님은 우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자격에 대한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OO님이 괜찮은 사람이란 반증이기도 해요. 보통 안괜찮은 분들은 자격에 대한 고민조차 하지 않으시거든요.Q2) “ 제 나이도 이제 적지 않은데, 나를 lead 해 줄 수 있는 분이 계신 곳으로 가고 싶다는건 욕심일까요?”한국에서는 나이가 그래도 중요한 편이잖아요.. 다른 스타트업으로의 이직을 준비한다면 작은 조직에선 팀장 역할을, 큰 조직에서는 엣지 있는 역량을 요구할 것 같아서 걱정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팀장으로서 팀원과 함께 일해 보기도 했고, 리더십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고 있지만, “리더가 된다는 것”이 아직은 어색하고 두렵네요.
김나이 커리어 액셀러레이터 답변
OO님을 lead해 줄 만한 사람이라는 것은, 결국 보고 배울 만한 role-model을 원한다는 것으로 바꿔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회사 안에서 누군가로부터 보고 배울 수 있으면 가장 좋기는 한데, 실상은 그렇게 role-model을 찾을 수 있는 조직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첫째로는 어쩌면 ‘ 각자도생의 시대가 왔기 때문에 보고 배울 사람이 없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 편할 것 같아요. 두번째는 ‘ 변화가 너무나 빠른 시대가 되었기에, 어떤 직무이든 간에 예전에 어떤 영역에 대해 탁월했던 분들이, 지금 이 상황과 이 영역에서도 탁월하리라는 보장은 없다.’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회사 안에서 Role-model을 찾기 보다는 회사 밖에서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내가 하고자 하는 영역, 같은 직무 영역 속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가 누구인가를 알아보고, 그 선수들이 뭘 하고 있는가를 알아보면 좋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과거의 HR과는 다르게, 요즘 HR을 하려면 개발자, 마케터 등등 다양한 직무 담당자들과 커뮤니케이션 해야 하고 그에 대한 배경지식들이 필요한 것처럼요. ‘지금 현장에서 이 일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다’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누군가의 과거의 지식/경험을 듣는 것 보다는 우리 회사 보다 한 발짝 앞에 있는 회사, 나와 같은 직무영역에서 조금 더 앞서 있는 사람이 지금 무슨 고민을 하고 있고 어떤 것들을 하고 있는지를 의식적으로 보고 있는가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내가 리더 역할을 잘 할 수 있을까, 내가 보고 배울 만한 리더가 있는가를 너무 고민하지 마세요. ‘내가 그 일을 얼마나 하고 싶은가, 그 자리가 나에게 정말 좋은 자리인가’만 고민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요.
인살롱 in 인살롱 ・ 2021.06.28 존중받는 피드백의 요건(1)
피드백에 대한 불편한 사실로 시작하겠습니다. 컬럼비아대 심리학자 케빈 옥스너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기가 받은 피드백의 30%만 수용합니다. 한참을 고민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해서 어색함과 불편함을 딛고 마련한 자리에서 진심을 다해 전달하는 것이 피드백인데, 70%가 허공으로 날아간다? 세상에 이보다 비효율적인 일이 있을까 싶습니다. 그런 이유에선지 올바른 피드백에 대한 사람들의 갈증이 큽니다.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 말이죠. 그만큼 쉽지 않은 조직내 불멸의 과제일 것입니다.사실 ‘피드백’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꽤 오래전입니다. 1860년대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시절, 기계시스템 내에서 에너지, 운동량, 신호와 같은 산출물을 시작점으로 돌려보내는 방식을 뜻했죠.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프레드릭 테일러가 과학적 관리법으로 노동자의 최효율적 활용점을 찾은 것처럼, 초기 피드백 역시 결과물을 시작점으로 환류시켜 공정을 개선시킨다는 효율성 기반의 제조프로세스 상의 조절원리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산ㆍ제조 과정에서 피드백의 ‘수용도’는 문제되지 않습니다. 전달하는 만큼 반영되는 것이고 그에 따라 변화된 산출물에 대한 평가만이 남을 뿐이죠.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피드백은 매니지먼트 영역에까지 전파되어 조직내에서 직원과 성과관리를 위해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100여년이 지나 4차산업혁명을 논하는 지금까지도 그 ‘관리를 위한’ 피드백의 역할에 변함이 없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문명의 발전 순서가 기술이 우선하고 문화가 뒷받침되는 것이라 하더라도 빛의 속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과 그로 인해 변하는 현실세계에 비해 사람들의 인식체계의 결과물인 '문화'는 그 속도가 한참 뒤쳐져 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더구나 ‘기업’이라는 조직체에서 그의 ‘문화’수준으로 대변되는 것은 상하간 커뮤니케이션과 상호 신뢰의 정도이기에 리더의 피드백 방식과 팔로어의 수용도는 우리가 보다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오늘은 리더의 피드백에 대한 몇가지 질문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Q1. 이 피드백이란 것. 불편한데 꼭 해야 하나?**다른 이에게 개선의견을 전달하는 과정은 불편함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 본연의 위험회피본능입니다. 그래서인지 팔로어에 별다른 피드백을 하지 않는다는 리더도 많습니다. 믿고 맡긴다는 논리를 내걸고 말이죠. 하지만 피드백을 받지 못하며 일한다는 것은 개선과 성장의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개방형 소통에 능한 MZ세대와 함께 일하게 되면서 올바른 피드백은 퇴사를 결정지을 만큼의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기업들의 조직문화 진단 결과를 보더라도 어느 회사를 막론하고 개선희망사항 수위에 올라오는 것이 ‘상사로부터의 올바른 피드백’이며, 이는 곧 MZ세대의 성장에 대한 갈증, 존중받고자 하는 바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건전한 피드백 문화를 조성하는 것은 기업의 매력도를 높이는 key factor이자 차별화 요소인 것입니다. **Q2. 피드백, 주는 것인가? 받는 것인가?**리더와 팀원간 피드백 현장을 들여다보면 낯익은 광경이 펼쳐집니다. 상사는 본인의 권위와 지위를 확인하는 발언을 던지고 팀원은 디펜스를 치기 바쁩니다. 흡사 꾸지람과 자기방어의 합주곡 같은 느낌입니다. 그리고 결과는 예상했듯이 항상 상사의 승리입니다. 팀원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것으로 마무리되며 회의실을 나서는 상사는 ‘역시 난 논리적’ 이라는 생각과 함께 상황을 주도한 본인의 리더십에 내심 흡족해합니다. 충분히 알아듣게 얘기했을테니까요. 그리고 이러한 피드백의 70%(이상)는 날아가 버립니다.우선, 피드백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해봅시다. 바로 개선과 성장입니다. 피드백 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잘할 때 잘한다는 칭찬, 그리고 잘못했을 때 잘못했다는 지적과 함께 개선방향을 전달함으로써 피드백 수용자가 이전보다 한 뼘 더 성장하는 실질적인 변화를 기대하는 것이 피드백의 목적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를 수행하는 것은 전적으로 피드백 수용자의 선택입니다. 그런 점에서 피드백은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경영컨설턴트 랜디 로스가 '아무리 영감을 주는 정보일지라도 좋은 정보를 알게 되는 것이 반드시 변화로 이어진다고 볼 수 없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Q3. 피드백의 수용도가 높아지는 경우는?**피드백이 ‘받는 것’이라면 팔로어의 수용도를 어떻게 하면 높일 수 있을까요? 이는 리더에 대해 느끼는 신뢰의 정도, 즉 상호관계성의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자연스레 떠오르네요. 어떻게 신뢰를 높일 수 있는가, 상사가 하는 말이 진심으로 자신의 성장을 바라고 하는 것이라는 단단한 신뢰, 그것이 생겨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말이죠.실리콘밸리의 팀장들(Radical Candor)의 저자 킴 스콧은 성공하는 조직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리더와 직원의 신뢰관계를 모든 일의 핵심으로 꼽습니다. 그리고 리더가 신뢰를 갖기 위한 두가지 요소를 제시합니다.첫 번째는 ‘업무적 관계’를 넘어서는 것. 즉 직원들의 업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넘어서 리더 본인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모든 직원에게 개인적인 관심(Care Personally)을 가지는 것입니다. 경영가 케빈 톰슨이 주장하는 ‘정서적 자본’을 축적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성과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직원에게 피드백을 전하려는 노력입니다. 특히 부정적 피드백을 전하는 것은 분명 힘든 일이지만, 이러한 힘든 피드백을 오해없이 전달하려는 노력이 개인적인 관심과 함께 끊임없이 이루어질 때 리더의 신뢰도는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Q4. 지지할 것인가? 교정할 것인가?**조직마다 칭찬하는 문화를 중시하다보니 소위 ‘쓴소리’를 하는 것이 어려워진다고 하소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실제로 ‘하루한번 칭찬하기’와 같은 그라운드 룰을 한번씩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모두다 칭찬하고 서로 추켜세우는데 나만 팩트폭격을 가한다면 리더십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을테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중요한 일을 앞두고 실수를 반복하는 직원에게 계속해서 지지와 신뢰를 보낼수 만도 없는 노릇입니다.세계적인 비즈니스 컨설턴트인 리차츠 윌리엄스는 피드백를 4가지 종류로 구분합니다. 서로의 견해를 존중하는 지지적 피드백, 개선과 발전을 위한 교정적 피드백, 상처와 절망을 주는 학대적 피드백, 타성과 나태함을 양산하는 무의미한 피드백이 그것입니다. 이중 우리가 주목할 것은 지지적 피드백과 교정적 피드백의 적용방식일텐데, 초보자나 일정수준에 올라오지 못한 이들에게는 지지적 피드백이 적합하며 전문가 수준의 대상에게는 교정적 피드백을 사용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합니다. 이는 스티브 잡스가 피드백을 놓고 남긴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유능하고 의지할 만한 직원을 위해 상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그들이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때 정확하게 지적을 해주는 것입니다. 투명하면서도 분명하게요. 그래서 다시 정상궤도에 올려놓아야 합니다.” 사실 피드백, 특히 어려워하는 리더의 피드백은 여러모로 볼 때 절대 단순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이해해야 하고(통찰력), 일에 대해 잘 알아야하며(전문성), 너무 늦지 않게 때로는 너무 즉각적이지 않게(시기적절성), 그리고 오해하지 않도록 전달해야 하는(소통력), 말 그대로 리더십의 종합판이며 그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쪽지시험과 같은 것이 리더의 피드백입니다.세상에 완벽한 리더는 없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피드백의 수용도를 높이기 위한 스킬, 즉 ‘피드백 지옥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인살롱 in 인살롱 ・ 2021.06.29 갈등 관리, 어떻게 볼 것인가?
얼마 전에 모 교육청 장학관님들을 모시고 갈등관리를 주제로 강의를 진행한 적이 있다. 처음 강의 요청을 받았을 때, 이분들은 갈등이 별로 없으실듯한데 무엇으로 갈등을 겪으실까 궁금했었다. 그런데, 사전 설문 조사를 받아보니 이분들도 여느 회사의 조직과 다름없이 팀원과의 갈등, 팀원끼리의 갈등, 주어진 일과의 갈등과 같은 다양한 고민을 털어놓으셨다. 강의를 통해 내가 느낀 것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등은 존재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내가 조직에서 겪었던 사례도 얘기를 하며 조금 더 편하게 서로 말씀을 나눌 수 있었다.이쯤에서 눈치를 채셨겠지만, 오늘은 갈등 관리를 주제로 얘기를 해볼까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갈등이 없기를 원한다. 인간관계는 순풍에 배가 나아가듯 아무 일 없기를 원하고, 혹시라도 갈등의 불씨가 보일라치면 서둘러 덮어 끄기에 바쁘다. 아무래도 정신적 에너지와 불필요한 시간이 많이 소모되기에 가능한 늘 평온한 상태를 바라는 듯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두 다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게 아닐 텐데 갈등이 없을 수 있을까? 나와 상대방의 의견이 다르다면 당연히 조율의 과정이 필요하고 모든 조율이 서로의 양보 아래 완벽하게 이루어질 수 없다. 오히려 아무 일 없는 듯 평화롭게 보이는 상황이 더 큰 문제를 부를 수도 있다. 이를테면, 말하지 못한 거대한 갈등의 빙산이 물밑에 잠겨 있어, 언제든 물 위로 솟구쳐 오를지 모르는 경우다. 대개 자유롭게 얘기를 꺼낼 수 없거나, 얘기를 꺼내도 무시 내지는 묵살당하는 경험이 있을 때 갈등은 오히려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경우가 많다. 그게 쌓이고 쌓이다 어느 날 분출되면 구성원이 조직을 떠나거나 서로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기도 한다.하지만, 갈등도 조금 더 들여다보면 크게 2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갈등의 첫 번째 유형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나 업무에서 비롯하는 '과업 갈등'이다. 한마디로 일을 하다가 의견의 차이로 발생하는 갈등이다. 누구나 손발이 척척 맞으며 일을 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건강한 조직에서도 이러한 과업 갈등은 늘 발생할 수 있다. 오히려 이러한 과업 갈등조차 없다면, 그 조직은 거대한 권력이 존재하여 아무런 의견도 나올 수 없거나, 무기력한 분위기에서 소수의 의견을 무조건 따르는 상황임에 틀림없다. 갈등의 또 다른 두 번째 유형은 깊은 감정의 골이 함께 하는 '관계 갈등'이다. 대개는 함께 하는 일이나 업무 자체를 떠나 그 사람이나 조직과의 관계 자체가 불편한 경우이다. 대개 이런 관계 갈등은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업무 갈등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악화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즉, 처음에는 의견 차이에서 출발했지만 한 쪽으로 일방적인 의사결정이 진행되거나 나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묵살되는 경우에 감정의 상처를 입는 경우이다. 이렇게 상처를 입게 되면 객관적인 시각을 지녀야 할 공적인 업무 상황에서 주관적인 시각과 사적인 감정에서 비롯하는 행동이 나타난다.위에서 살펴본 2가지 갈등 유형을 파악하게 되면 갈등 관리에 대한 해법도 조금씩 드러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과업 갈등'이 '관계 갈등'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업무를 추진하면서 많은 경우에 과업 갈등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면 건전한 경쟁과 함께 조직의 성과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위 그림 참조> 하지만, 과업 갈등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방치하거나 갈등의 당사자가 불합리한 결과라고 생각하게 되면, 부정적 요소로 작용하면서 관계 갈등으로 악화되고 결국 조직의 성과에도 손실을 가져오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때 갈등 관리의 핵심요소로 등장하는 키워드가 '심리적 안전감 Psychological Safety'이다. (심리적 안정감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온건한 과업 갈등은 심리적 안전감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관계 갈등은 심리적 안전감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심리적 안전감이란 업무와 관련해서 그 어떤 의견을 제기해도 벌을 받거나 보복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조직 내에서의 믿음이다. 과업 갈등을 해결하는 상황에서 의견을 제기하고 조율할 수 있는 조직이라면 심리적 안전감이 확보될 것이고, 반대로 의견을 제기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겉으로는 평화로운 침묵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무시당한 의견으로 인한 관계 갈등으로 심리적 안전감이 낮은 상황으로 볼 수 있다. 하버드 교수이자 리더십 전문가인 에이미 에드먼드슨의 책 <두려움 없는 조직>을 살펴보면, 침묵이 어떻게 조직의 성과를 갉아먹는지에 대해 잘 보여준다. 여기에 업무 수행의 기준까지 함께 고려하면 두려움이 만연하거나 무관심한 상태로 심리적 안전감이 낮은 조직을 벗어나, 안주하는 조직을 넘어 학습을 통해 성과를 만드는 조직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제시한다.갈등은 평소 부정적인 뉘앙스로 많이 사용해 왔지만, 업무를 진행하며 나타나는 과업 갈등은 오히려 조직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반면에 과업을 떠나서 감정이 개입되는 관계 갈등은 조직을 좀먹는 암세포처럼 자라날 수 있다. 결국 갈등을 관리하는 것도 전략이 필요하며, 과업 갈등은 성과를 향상하는 데에 적극 활용하되 관계 갈등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심리적 안전감을 확보하는 조직이 된다면 갈등은 더 이상 머리 아픈 골칫덩어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김용현 in 인살롱 ・ 2021.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