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과 포용성이 중요한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조직 내에서 현실로 다가온다면 어떨까? 일본 기업들의 LGBTQ에 대해 고민도 ‘어느날 부하직원이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실제로 부하직원 혹은 나의 동료나 선후배가 커밍아웃을 한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어떻게 해야 그 구성원이 불편함 없이 회사를 계속해서 다닐 수 있을지…생각만으로도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혹시나 내가 평소에 별 생각 없이 썼던 표현들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진 않았을지 아찔해진다. LGBTQ란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Queer/Questioning의 머릿글자를 딴 것으로, 성적소수자를 통칭하는 표현이다. 일본 최대 광고회사인 덴츠(電通) 산하 Diversity Labo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인의 8.9%가 LGBT에 해당한다고 하며, 응답하지 않은 인원들까지 포함하면 실제 비율은 더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즉 10명 중 1명은 LGBT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우리 주변에만 없을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 돌아보니, 평소에 이성애자의 입장에서 대화하고 생활함은 물론 조직 내의 각종 제도도 모두 이에 맞춰져 있었음을 느끼게 된다. 기업의 LGBTQ 대응이 주목받는 배경 일본에서 기업의 LGBTQ에 대한 대응이 주목받는 배경으로는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 우수한 인재를 채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 기업의 경우 다양성에 대한 유연한 대응을 통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직장’이라는 이미지를 얻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우수한 인재를 채용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둘째, SDGs. 차원에서 기업이 얼마나 다양성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가 기업을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LGBTQ friendly한 기업이 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이 직원 뿐 아니라 외부고객, 거래처 선택에 있어서도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새로운 고객을 발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LGBTQ에 대한 이해를 통해 LGBTQ를 고객으로 하는 새로운 제품/서비스를 개발하여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SDGs는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로 빈곤, 질병, 지구 환경 등 UN의 국제사회 최대 공동목표를 말한다. 일본 기업의 LGBTQ 대응 사례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실제 일본 기업들이 어떻게 구성원들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고자 노력하고 있는지 아래의 사례들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이번 사례 조사를 하면서 놀라웠던 점은 대부분의 이름을 알 만한 일본 기업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다양성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그중에서도 LGBTQ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별도 페이지를 두고 소개하고 있었던 점이었다. 내가 속한 조직에서는 앞으로 다양성 혹은 LGBTQ에 대해 어떤 대응을 해 나가야 할지 작은 아이디어를 얻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도요타(TOYOTA) 도요타는 ‘각자의 섹슈얼리티에 관계 없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제도를 만드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대표적인 세 가지 제도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LGBTQ 전용 상담창구’를 두고 있다. 이 상담창구에서는 상담 내용에 대한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엄격하게 지켜지는 것을 전제로 섹슈얼리티에 대한 직장 내 환경 및 제도에 대해 언제든지 상담할 수 있다. 도요타를 비롯한 많은 일본 기업들이 동성 파트너에 대해 법적인 배우자와 동일한 복리후생을 제공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러한 제도의 수혜를 받기 위해 강제로 커밍아웃 하는 일이 없도록 이러한 창구를 두고 있는 것이다. 둘째, 사내에서 LGBTQ에 대한 이해를 촉진하기 위한 연수를 실시한다. 연수 내용은 ‘무의식적인 편견’에 의한 차별적 발언 또는 행동을 의식하도록 하는 것을 중심으로, LGBTQ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직장 내 물리적 환경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설치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한 비영리단체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LGBTQ가 회사 혹은 학교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 중 65%를 차지하는 것이 화장실 이용이라고 한다. ‘화장실’이라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놓치기 쉬운 부분까지 신경쓰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히타치 솔루션(HITACHI Solutions) 히타치 솔루션은 기업의 LGBT 지원에 대해 평가하는 PRIDE 지표에서 4년 연속 GOLD 인증을 수상한 곳이다. PRIDE 지표는 LGBTQ가 일하기 좋은 환경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work with Pride라는 단체가 2016년에 설정한 지표를 말한다. Policy, Representation, Inspiration, Development, Engagement/Empowerment 5가지 지표로 평가 된다. 이 다섯 가지 지표에 따라 히타치가 실천하고 있는 내용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① Policy(행동선언) 대표이사가 ‘My 인권 선언’ 중 인권 존중에 대한 방침과 ‘성별, 성적지향, 성인지’ 등에 대해 차별하거나 상처를 주는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였다. ② Representation(당사자 커뮤니티) Ally(LGBTQ를 지지하는 사람 또는 동맹)가 모여 2017년에 자발적으로 생겨난 커뮤니티가 있으며, 사내 학습 모임을 열거나 동종(IT) 업계 내에서 LGBTQ 교류회에 참가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을 지속해 나가고 있다. ③ Inspiration(계발활동) LGBTQ에 대한 이해를 촉진하고, 구성원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자 ‘Diversity 강연회’를 매년 실시하고 있다. ④ Development(인사제도/프로그램) 가족의 정의에 ‘동성 파트너’를 신설하여 법적 배우자와 동일한 복리후생을 제공하고 있으며, 구성원은 물론 외부 방문객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All Gender 화장실을 설치하고 있다. 또한 Diversity에 대한 전 구성원 인식 조사를 2022년부터 실시하고 있다. ⑤ Engagement/Empowerment(사회공헌/동기부여) ‘직장내 LGBT핸드북’ 및 e러닝 과정을 NPO법인 무지개 Diversity의 감수 하에 작성하여, 사내에서 전파하고 있다. 시세이도(SHISEIDO) 시세이도 역시 PRIDE 지표에서 GOLD 인증을 수상한 대표적인 기업이다. 시세이도는 2017년부터 '동성 파트너십 인정'을 취업규칙에 명시하고 있으며, 사내에서 LGBTQ에 대한 이해를 촉진하는 연수를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기업 차원에서 동성혼 법제화에 대해 공식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한국의 기업이라면 이러한 입장 표명에 꽤 후폭풍이 클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결단을 내린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일본 최대 LGBTQ 행사인 ‘Tokyo Rainbow Pride’에 출전하여 LGBTQ 당사자를 대상으로 헤어, 메이크업을 지원하는 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성전환 수술을 한 사람들에 대한 메이크업 코칭을 실시하기도 한다. 특히, 매장에서 고객응대를 하는 직원 8천명을 대상으로 LGBTQ 대응 연수를 진행하였는데, LGBTQ를 고객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하는 차원에서 이러한 연수를 실시했다고 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닌텐도(NINTENDO) 닌텐도는 ‘어떤 개성을 가진 구성원이라도 모든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활기차고 기분 좋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을 중요한 철학으로 내세우고 있었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파트너십 제도’를 도입하였는데, 동성 파트너는 물론이고 사실혼 관계에 있는 이성 커플에 대해서도 법률상 부부와 동일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파트너십 제도를 도입한 것을 계기로 하여, 사내 포탈에 대표이사가 ‘악의 없는 발언이라 하더라도 당사자에게 큰 정신적 피해를 입힐 수 있으며 이에 대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 의견을 게시하기도 하였다. 또한 사내에서 차별이나 직장내 괴롭힘에 관한 규정에 성적 지향이나 성인지에 대한 차별적 발언이나 소위 ‘아웃팅.’을 하는 것을 명확하게 금지하고 있다. .아웃팅: 개인의 성적 지향이나 성인지에 대해 본인의 양해 없이 제 3자가 공표하는 것. 일본 기업의 LGBTQ에 대한 대응의 시사점 위에 소개한 사례 외에도 일본의 많은 기업들이 LGBTQ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이를 공개적으로 소개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보수적일 것만 같은 일본 기업들이 LGBTQ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하게 된 것은 용기 있게 커밍아웃을 한 구성원 한 명에서 시작된 변화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러한 환경이 갖추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본 기업 내에서 커밍아웃을 하거나, 실제로 파트너십 제도를 활용하는 인원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제도가 갖추어지고 한 명이라도 활용하는 사람이 생겨난다면 앞으로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 외에도 일본 기업들은 ‘다양성’에 대해 여러 차원에서 고민하고 실천 방안을 찾아 나가고 있었다. 입사 지원서 혹은 인사정보 성별 기입란에 남, 여 외에 ‘선택하지 않음(기타)’ 항목을 추가한다든지, 비행기 기내방송에서 “Ladies and Gentlemen”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이미 오래된 사례다. 육아뿐 아니라 가족의 간병을 위해 근무 시간이나 형태를 선택할 수 있게 하거나, 구내식당의 식단을 다양화하여 외국인 혹은 특정 종교를 가진 사람도 식사를 할 수 있게 하는 등 많은 기업들이 작은 것에서부터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러한 사례를 찾아보며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각 회사마다 다양성에 대해 어떤 것을 중점적으로 두고 있는지 그 철학을 내세우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앞으로 많은 기업들이 다양성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를 만들어 나가게 될텐데, 단편적인 제도나 이벤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러한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문화와 철학을 정립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