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 전 취업을 준비하면서 공무원이 아닌 회사 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뒤에 나에게 가장 적합한 직무는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 당시 처음으로 직군과 직무라는 개념을 알았는데 문과, 교직 이수를 한 나에게 적합 한 직무를 찾아보니 경영지원 직군에 HR직무가 눈에 들어왔다. HR직무는 무엇을 하는 일이지? 인사? 내가 군대에서 인사장교, 인사과장을 했을 때 그 인사인가? '그 정 도면 쉽게 해볼 수 있겠는데' 라는 생각으로 HR에 처음 발을 내딛게 됐다. 아주 순진한 마음으로. 물론 군대의 인사가 회사의 인사와 전혀 다르지는 않았다.똑같이 사람과 관련된 일이고 직접 선발만 안 할 뿐이지 급여와 복지, 평가와 발령, 배치 등 회사에서 하는 인사와 다를 것이 없어 보였기에 이게 갓 전역한 대위의 눈에는 충분히 쉽게 적응해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내가 아는 인사는 정말 인사의 작은 부분만 본 것이었다.**본격적으로 회사에서 인턴으로 HR업무를 시작했을 때, 회사 유니폼 창고에서 수백 장의 동하계 유니폼을 정리하고 직원들의 유니폼 세탁을 전담하면서 '이것이 내가 생각하던 인사였나..?'라는 회의감도 들었지만 그것 또한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묵묵히 나의 일을 충실히 수행했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는 인사총무라는 직무여서 나는 거의 총무 담당을 했다. 그리고 인턴 생활을 한지 얼마 안 돼서 한 사업장의 오픈 멤버로 정말 제대로 된 인사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드디어, 나도 인사담당자가 되는 구나' 라는 기대를 안고 시작했지만 시작은 녹록지 않았다. 4대보험 신고와 급여계산, 군대에 있을 때는 재경단에서 알아서 보내준 급여를 확인만 할 줄 알았다. 급여가 잘 들어왔는지, 잘못 들어왔는지 확인을 하지도 않았고 어떻게 계산을 하는지도 모르고 감사히 월급만 받았다. 그런데 막상 내가 계산을 하지 않으면, 계산을 제대로 못 하면 그 여파가 굉장히 크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때 급여의 원리를 알았다. 그 당시 나에게 급여를 알려주던 여자 선배님은 209H는 어떻게 해서 나온 수치인지, 4대보험은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최저시급과 직급별 인상률은 어떻게 계산해야 되는지를 아주 자세히 알려주셨다. 그때 내가 급여를 배우지 못했다면 지금 내가 '급여 테이블, 직무급 / 능력급 제도 개선' 를 직접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후로도 실무 HR담당자를 하면서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연말정산을 하다가 대표님의 연말정산 신고를 잘못해서 꽤 많은 금액이 추징될 뻔한 적도 있어서 팀장님과 같이 강남역에 있는 세무서를 찾아가서 소명서를 제출한 적도 있었다. 그때는 정말 가슴 속에 사직서를 품고 다녔다. 언제 비서실에서 호출이 올지 몰라서..매일이 지옥 같았다. 그 이후로 연말정산을 할 때면 대표님꺼는 반드시 두 세 번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지만 연말정산 업무를 안 한지 3~4년 지난 뒤 지금 내가 연말정산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그때 경험을 해봤기 때문이다. 한번은 평가 업무를 하면서 전 팀의 KPI를 나보고 세우라는 팀장과 실장님의 말에 각 팀의 역할은 무엇인지, 올해 각 팀은 어떤 정량적, 정성적 목표를 세워야 적합한지를 알게 되었다. 말도 안 되는 목표에 해당 팀의 팀장을 포함한 구성원들의 아우성을 듣느라 힘든 적도 있었다. 그때 왜 KPI가 중요한지, 조직의 목표는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공정한 평가를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신경 써야 하는지 몸소 경험하게 됐다.HR업무를 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풀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치부를 이렇게 들어내는 이유는 바로, '나는 어떤 HRer로 성장하고 싶은가'에 대한 자신만의 고민을 하기 바란다는 뜻에서다. 한국의 HR은 나의 짧은 지식으로는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내가 HR담당자로서 근무할 때만 해도 HR이라고 하면 인사총무였다. 물론 인사관리라는 HRM과 인재육성이라는 HRD로 나눠진 곳도 있었지만 지금은 HR의 각 영역 별로 부르는 호칭이 다 다르다. (사실 나도 정확히 잘 모른다.) HR의 그 많은 영역에서도 나는 어떤 HRer로서 성장하고 싶은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나에게 남은 직장생활에서 중요한 나침반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다행히 나는 짧고 굵게 HRM과 HRD를 다 경험해봤다. 사실 경험했다고 해서 엄청나게 깊이나 전문성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의 HRer목표는 나의 다양한 HR경험을 바탕으로 HRBP(HR Business Partner)가 되는 것이고 HR의 기틀을 잡아야 하는 곳에서 HR관련 각종 제도와 체계를 잡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목표는 무엇인가? 짧은 경력이지만 HR을 하면서 내가 가장 해보 고 싶었던 것, 가장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은 딱 하나다. **'물 흐르듯이 HR Process가 연결이 되는 것'**이다. 나는 HR의 시작이 선발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좋은 사람을 선발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면 선발 기준과 평가 방식을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되고 다양한 과정을 거쳐서 실제 채용을 하려면 채용 직무와 경력에 맞는 연봉체계(직무급, 능력급 등)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사람이 왔을 때 어떻게 회사에 적응하고 자신의 역량을 회사에 쏟아낼 수 있게 할 것인지 OJT를 포함한 입문교육, 직급별 교육 등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매년 성장하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 선발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우리 조직의 문화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하고 공정한 평가를 통해 보상도 해줘야 한다. 이처럼 HR은 하나의 영역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다. 각자의 영역이 상호 연관성이 있게 물 흐르듯이 제도가 설계되어야 하는데 내가 경험한 조직, 내가 알고 있는 조직은 쉽게 이 과정을 실행하지 못했고 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경쟁사회 속에 살고 있으니깐. 내가 더 잘 보여야, 내가 더 성과를 가시적으로 내야 나도 조직에서 승급, 승진할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가 몸 담고 있는 HR직무는 **각 영역별로 전문성은 필요하지 몰라도 배타성은 필요하지 않다.**과거에 HR직무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라는 말이다. 이 말은 사람을 다루는 일은 만(萬)가지가 넘는다는 말이고 안 좋게 이야기하면 "이것도 인사일, 저것도 인사일"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이처럼 HR은 사람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사람의 일에는 정답이 없다. 사람을 다루는 일 또한 정답이 없다. HR Data를 바탕으로 다양한 기법과 프로그램을 적용해서 정답을 찾는 것도, 정답을 찾기 위한 근거를 만드는 것도 분명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HR은 정답(正答)을 찾으려고 하기 보다는 해답(解答)을 찾아야 한다.**그럼 해답(解答)을 찾기 위해 우리는 어떤 HRer로 성장해야 될까? 그 답은 이 글을 읽는 각자가 찾았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나도 그 해답을 찾기 위해 꾸준히 HR직무 안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