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유명한 출판사 대표님께서 이런 내용의 고민을 블로그를 통해 공유해주셨습니다.“핵심가치도 만들고, 일하는 방식(workway)도 만들고, CoC(code of conduct)도 만들었는데, 왜 우리 조직은 그대로일까요?” 기껏 멋진 것들을 만들어놓고, 다시 리더와 시스템에 대해 반문하는 현실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라는 화두를 던지는 내용이었습니다.오늘날 많은 기업들이 변화의 지향점인 핵심가치, 일하는 방식, CoC를 정립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변화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죠. 저 역시, “큰 기업은 원래 바뀌기 어려워요” 라는 주변의 자조섞인 한숨들을 따갑게 들어왔습니다. 오늘은 “조직문화 변화 만들기”에 대한 첫 번째 글로, 통합과 차별화라는 키워드를 다뤄 보고자 합니다. 통합 (integration) - 조직문화의 기본 속성 조직문화란 무엇일까요? 형성의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한 기업이 직면한 경영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택했던 조직 고유의 행동 양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 플랜테리어 업계에서 혁신을 일으키고 있는 한 기업에서는 인력 운영과 관련해 두 가지 원칙이 있다고 합니다. 전공자를 총원의 30% 이상 두지 않는 것과, 입사하면 직무와 상관없이 플랜테리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업계의 혁신을 위해서는 새로운 시각과 다양성이 필요하다는 (본인도 비전공자인) 창업자의 가치관이 반영된 원칙인데요. 그 결과, 이 기업은 특유의 ‘뾰족함’을 유지하며, B2B 영역에서 기존에 없던 비즈니스 모델을 정착시키고 있습니다.H그룹의 이야기도 이와 비슷합니다. 조선소를 지을 때의 일화인데요. “어느 나라에서도 돈을 빌려주지 않겠다고 한다. 도저히 못하겠다” 라는 창업주의 하소연에, 당시 대통령이 “당신이 못하겠다고 하면 대한민국에 누가 가능하겠냐”라고 답했다고 하죠. 경부고속도로, 새만금과 같이 허허벌판에서 거대한 것들을 만들어냈던 창업주의 가치관, ‘이봐 해 봤어?’는 당시의 척박했던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택할 수 밖에 없었던 도전과 불굴의 조직문화로 이어져 왔습니다.이처럼 조직문화는 조직의 목표를 정렬시키고(goal alignment), 경영의 도구(management tool) 역할을 하며, 조직 통합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차별화 (differentiation) - 하위 문화 (subculture) 의 발현 하지만, 조직이 성장하며 필연적으로 전체 조직문화(macro-culture)와 조금씩은 다른 문화들이 생기기 시작하는데요. 이를 하위 문화(subculture)라고 부릅니다. 하위문화는 조직이 성장함에 따라, 부서, 제품, 기능, 시장, 지리 등의 요소에 따라 나타납니다. 한 기업 안에 있더라도, 생산직(기술직)과 엔지니어, 백오피스 직군의 문화는 전혀 다르죠. 아직도 생산직군은 공동체주의 문화가 남아 있습니다. 반대로, 엔지니어 직군은 좀 더 개인적인 성향을, 백오피스 직군은 좀 더 보수적인 모습을 보이죠. 또한 만드는 제품이 상이한 여러 사업부간에도 다른 문화가 생기기도 하며, 같은 제품/직군이라도, 지리적 위치(국가 등)에 따라 전혀 다른 문화가 발현되기도 합니다.이러한 하위 문화는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뉩니다(Martin&Siehl, 1983), 공통의 문화가 더욱 강하게 발현되는 하위문화(enhancing subculture), 공통의 문화와 충돌되지 않는 다른 가치를 함께 갖는 하위 문화(orthogonal subculture), 마지막으로 공통의 문화와 모순되는 가치를 공유하는 하위문화, 즉 반(反)문화(Countercultural subculture)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GM과 폰티악의 사례가 마지막 하위 문화의 사례라고 할 수 있죠.요약하자면, 조직문화는 통합과 차별화의 속성,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변화 프로세스의 모델 그렇다면 조직문화의 성공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어떤 프로세스가 필요할까요?여기서부터는 Richard Beckhard와 Harris 변화 프로세스 모델(1987년)과 Edgar Schein의 「기업문화 혁신전략」 내용을 지침 삼아 풀어나가 보겠습니다.먼저 변화 프로세스의 시작은 변화가 필요하고,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하는 변화 리더입니다. 다음 두 번째 단계는, 이상적인 미래상의 정의인데, 이는 궁극적으로 어떤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낼 것인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 다음 단계는 현재 상태의 평가로, 이상적인 미래와 현재 상태 사이의 차이를 판단하기 위한 절차이며, 그 이후 변화관리조직(CMT, Change Management Team)의 신설과 제반 변화 작업로 이어지게 됩니다.여기서 핵심가치, 일하는 방식, CoC를 정립하는 작업은 이상적인 미래상의 정의에 해당합니다. 현재 상태의 평가는 조직문화 진단의 형태로 많이 이루어지고 있고, CMT는 CA제도의 운영, 변화 작업은 여러 “기업문화 개선” 작업의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상은 구체적일 때 의미가 있다 에드가 샤인은 이상적인 미래상의 정의는 “비즈니스 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이루지 못한 이상을 달성하려 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새로운 사고방식과 업무 방식을 채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더욱 팀워크가 필요하다”, “우리는 더욱 개방적이어야 한다”와 같은 문구면 안 된다는 거죠. 만약 팀워크를 논하고자 한다면, 어떤 업무가 의존성이 있는지, 어떤 팀워크가 필요한지가 구체화되어야 한다고 합니다.때문에 우리는 핵심가치를 만들고, 이를 구체화시키기 위해 역량모델이나 역량사전을 만드는 후속 작업을 진행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각종 굿즈나 교육, 이벤트를 통해 이 내용을 구성원들에게 홍보하며 인식을 시키죠.근데 여기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부분은 구체화의 정도입니다. 생산 직군, 엔지니어 직군, 백오피스 직군에서 정의하는 팀워크는 각각 다릅니다. 같은 직군에서도, 서로 다른 부서나 팀이라면 또 다르겠죠. 용접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 팀워크와, 보고서를 쓸 때의 팀워크는 다릅니다. 계약서를 쓸 때와 채용 계획서를 쓸 때의 팀워크는 또 다르구요.일정 성숙도에 올라선 기업, 즉 하위 문화가 많이 발현된 기업일수록, 구체화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조직이 지향하는 미래상(핵심가치, 일하는 방식, CoC)과 구성원의 실제 업무 사이의 거리를 최대한 좁히려면, **해당 구성원이 속한 조직의 하위 문화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실패에 대한 에이미 애드먼슨의 분류에 따르면, 실패를 비난하지 않는다는 가치 지향점은 ‘예방 가능한 실패’에는 다소 적용되기 어려운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창조성보다는 생산성/효율성이 강조되는 생산직에 있어서의 업무상 실패는 대부분 이 예방 가능한 실패의 영역에 위치해 있죠. 따라서, 생산직군에 있어서의 해당 가치의 구체화 내용은, 엔지니어나 개발자 직군과 같을 수 없습니다. 이는 보안을 다루는 조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핵심가치, 일하는 방식, CoC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교육, 홍보, 인지와 같은 작업도 중요하지만, 개별 직군, 조직의 하위 문화에 적용될 수 있도록 충분히 구체화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두 작업이 선후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자신의 업무 환경에 구체적으로 적용되지 않는 지향점은 애초에 구성원들에게 와닿지 않을 테니까요. 현실을 구체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방법 현실을 구체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방법에 있어, 샤인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설문 방식 평가의 무용성을 주장합니다.**① 문화란 조직내 모든 관점을 포함하므로, 조직 내 존재하고 있는 가정을 미리 다 예측하고, 포괄할 수 있는 설문지는 작성될 수 없다, ② 설문지에 대해 응답자가 어떻게 해석할지 알 수 없고 익명성에 대한 불신이 있다, ③ 직원들의 불평과 불만은 문화에 내재된 당연한 요소이다. 불만의 상태가 아니라, 불만족하는 가치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어떠신가요? 동의하시나요? 물론, 일종의 경향성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설문은 나름의 의미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평가하는 작업이 ‘진단’과 ‘점수’로만 끝내서는 안 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마 많은 분들께서 동의하시리라 생각합니다.샤인은 현실의 문화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인터뷰와 워크숍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그 프로세스를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이를 통해 하위 문화를 가진 개별 조직에 어떤 가정이 존재하고, 변화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엇을 강화하거나, 제거해야 하는지를 탐색할 것을 주문합니다. 또한 하위 문화에 좀 더 민감하게 대응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① 새로운 전략, 개선점 같은 목표에 대해 정의하기 ② 조직의 실질적 요소(규정, 의사결정 방법, 절차, 커뮤니케이션 등) 탐색하기 ③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확인하기 ④ 조직의 실질적 요소와 추구하는 가치를 비교하기 ⑤ 다른 하위 문화를 가진 집단과 함께 앞의 프로세스 반복하기 ⑥ 조직의 기본 가정을 끌어내 평가, 강화(장점)하거나, 제거(장애물)시키기 지속적인 변화 추진을 위해 조직문화 변화 작업은 통합적인 관점에서 시작될 때가 많습니다. 변화 프로세스 모델의 첫 단계가 ‘변화 리더’인 것처럼, 분명 변화에는 스폰서십이 필요하고, 통합적인 수준의 부스터는 변화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기 때문입니다.하지만, 성숙기에 다다른 기업일수록, 조직 내에는 동일 이슈에 대해서도 수없이 많은 가정(assumption)들이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회식에 대해, 출퇴근 시간에 대해, 보고에 대해, 결재, 회의에 대해, 개별 조직들은 제각각의 풍토와, 그의 기반이 되는 집단의 가정을 가지며 독자적인 하위 문화를 구축하고 있습니다.따라서, 변화를 보다 실질적이고,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차별화의 관점입니다. 개별 집단의 풍토와 가정들을 탐색하고, 통합적인 가치와 연결되는 구체화된 솔루션을 도출해 나가는 작업들이죠.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많은 인프라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구요. 그렇기 때문에, 샤인도 성공적인 변화에는 짧게는 5년에서 15년은 걸린다고 했고, 대다수의 석학들 또한 비슷한 기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문득 작년 원티드 하이파이브 컨퍼런스에서 인상깊게 들었던 “왜 리더십 교육은 실패할까”라는 세션이 기억이 납니다. 동시에, 무엇보다 정말 중요한 건 어쩌면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길을 찾아 가려 고민하는 조직문화 담당자들의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의 변화는 왜 실패할까"에 대한 답을 언젠가 찾기 바라면서요.다음 글에서는 오늘 글에서의 고민들을 어떻게 현실에서 풀어나가고 있는지에 대해 다뤄보고자 합니다.